세련과 난감 사이 겨울나무 사이로
―한경용(1956∼ )
오늘도 영등포역 버스 정류소에서 심야 버스를 기다린다.
자정이 되도록 세상과 싸우는
나를 태우기 위해
어둠을 밀치며 다가올 것이다.
버스가 먼저 숨이 막혀 떠나고
취객들에게 삶을 호소하는 여인들은 나뭇잎으로 떨어져 나갔다.
택시들이 집으로 가자고 대신 호객하고
불빛을 받는 여자들도
나를 불러 세웠다.
중년의 주름을 감추지도 않고 나온
세련과 난감 사이
너무도 평범한 여인들에게
지극히 할 수 없는 이야기
어쩌다를 여쭈어본다.
“남편이 다치갖고
종일 옆에 있어야 해예, 나올 시간은 이 시간밖에 없어예.”
내일 아침 새를 날리기 위하여 저 나무가 서 있는데,
이 밤은 좁히지 못하고 바람조차 불지 않는데
꼼짝도 않는 이 나무는 대체 어쩌란 말이냐,
서둘러 막차에 오르니
제 몸에 전깃줄을 칭칭 감아놓고
겨울밤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같이 달려가고 있다.
여느 중년 주부와 다름없어 보이는 이 여인들이 어쩌다 평범하게 살지 못하고 거친 세상에 나와 있을까…. 저마다 피치 못할 사연을 안고 겨울 나목처럼 거리에 섰다. 진짜 나무는 ‘내일 아침 새를 날리기 위하여 서 있는’다지만, ‘이 나무는 대체 어쩌란 말이냐’!
화자도 ‘서둘러 막차에’ 올라야 하는 처지다. 차창 밖으로 ‘제 몸에 전깃줄을 칭칭 감아놓고/겨울밤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같이 달려가고 있다’. 슬픈 화장을 하고 길에 나선 그 여인들의 영상이 화자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휘황한 겨울 밤거리를 달리고 있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