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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치솟는 듯하더니 곤두박질… 지금도 다리 건널 땐 식은땀 흘려”

입력 | 2014-10-16 03:00:00

[성수대교 붕괴 20년/그날의 아픔 아직도]
생존 의경 4명이 말하는 ‘20년 전 그날’ 이후
“병원서 높은분들과 숱한 기념촬영… 트라우마 치료는 제대로 못받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했다. 20년 전 그날 한강으로 추락한 성수대교 상판 위에는 서울지방경찰청 제3기동대 40중대 소속 의경 11명이 있었다. 경찰의 날(10월 21일)을 맞아 모범의경 표창을 받으러 강남으로 다리를 건너던 길이었다. 갑자기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들렸고 이들이 탄 승합차는 끊어진 다리와 함께 한강 물 위로 고꾸라졌다. 마치 아스팔트가 하늘로 치솟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성수대교 붕괴 후 20년, 동아일보는 참혹한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의경 11명 중 4명을 만났다. 속옷 차림으로 끊어진 다리 위에서 생존자를 구조하던 20대 청년들은 어느새 40대 중년 가장이 됐지만 “여전히 그날의 충격에서 헤어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13일 경기 화성시에서 만난 강준식 씨(40·당시 상경·사진)는 “그만 기억하고 싶다”고 말문을 떼고는 이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버스에 깔려 삶을 마감한 젊은 여성의 얼굴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사고 현장을 담은 사진을 건네자 그는 어느 차에 누가 타고 있었는지를 짚어낼 정도로 당시 상황을 자세히 기억해냈다.

기억이 또렷한 만큼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도 깊게 남았다. 이경재 씨(41·당시 수경)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정신적인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했다. 그는 “완충작용을 위해 다리가 미세하게 흔들릴 때마다 사고 순간이 떠오른다”며 “신호에라도 걸려 차가 다리 중간에 서면 유턴을 하고 싶을 정도로 공포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4, 5년 전 한 쇼핑몰에 갔다가 주변 사람은 가만있는데 혼자만 진동을 느껴 혼비백산 도망쳐 나왔던 경험도 있다고 털어놨다.

최충환 씨(41·당시 수경)는 “고속버스에서 자다가도 차가 다리를 건너는 느낌이 들면 알아채고 금세 잠에서 깨게 된다”며 “(탈출에 대비해) 창문이 수동으로 열리는 차를 타야 한다고 (주변에)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운전대를 잡았던 김희석 씨(41·당시 수경)는 “건설 현장에서 자재가 떨어지는 소리나 타이어 터지는 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심리치료 등 피해 치유를 위한 대처가 미흡해 생존자 트라우마의 그림자가 길어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이들이 사고 후 받은 보상은 경찰병원 입원 치료와 1주일가량의 휴가, 국회의원들이 건넨 금일봉 등이 전부였다. 이 씨는 “병원에 입원한 기간에도 높으신 분들과 기념촬영을 하느라 치료를 거의 못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그날을 향해 있었다.

강홍구 windup@donga.com·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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