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갖가지 디지털 소통 수단에 착착 쌓여진 나의 정보는 언제 어떻게 빠져나가 악용될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공포는 지난해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이미 현실화됐다.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들이 전 세계 일반인들의 통화 기록과 인터넷 사용 정보 등의 개인정보를 ‘프리즘’이란 비밀정보수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무차별적으로 수집, 사찰해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벌어진 ‘카톡 사찰’ 파문은 스노든이 준 충격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우리는 군사독재정권 시절 경험했던 통신 사찰에 대한 기억이 있어 ‘감청’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있다.
○ 정부-법원, 소통의 자유-권리 보호해야
그러나 상당수 사람들은 사생활 보호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 내 정보를 남과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음악이나 영상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기까지 공개하며, 남의 정보를 마구 퍼뜨린다. 이런 행위를 진정한 디지털 시대의 삶이라고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타인의 사생활을 퍼뜨리는 것은 자신의 사생활 보호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놓고 정보 유출과 감시를 걱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어떻든, 국민들은 마음대로 남과 소통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그것을 지켜줄 가장 큰 책임은 정부와 법원에 있다. 국가권력이 불법 감청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우선 수사기관이 무분별하게 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이 거의 무조건적으로 영장을 발부한다는 국민들의 의심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기업들에도 책임이 있다. 전례 없는 불신과 공포가 디지털 시대를 지배하게 된 책임은 그 기술을 만든 기업에도 있다. 뒤집어 생각하면 깊고 넓은 감시의 단초를 그들이 먼저 제공한 것이다. 기업들은 그 기술로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돈을 번 만큼 이용자의 불신과 공포를 줄이는 일에 나서야 할 책무가 크다.
이석우 대표가 향해야 할 시선은 법 집행 방해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 기반인 소비자들이다. 미국의 비슷한 회사들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살펴보면 극명하게 대비된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해 12월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한 기업의 회계 관련 정보를 요청하는 ‘국가안보 서한’을 받았다. 서한은 법원의 승인이 없어도 영장과 똑같은 효력을 가지는 것이다.
○ MS, FBI 정보 요구 서한에 법적 투쟁
이에 대해 MS는 “만약 정부 당국으로부터 고객(기업) 정보와 관련된 법적 요청을 받는다면 고객에게 이를 알려줄 것”이라며 “정부가 이를 막는다면 법적 투쟁을 할 것”이라고 선언한 뒤 FBI 서한이 법적으로 정당한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FBI는 바로 서한을 철회했다. 결국 MS사가 이긴 것이다. 이런 MS사의 행동은 3년 전 샌프란시스코의 한 작은 통신회사의 행동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이 회사는 거칠 것 없는 힘을 과시하던 FBI의 ‘국가안보 서한’과 ‘고객통보 금지명령’에 군말 없이 협조해 준 수백 개 다른 회사들과는 달리 법적 대응 중이다. 구글도 현재 같은 내용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단시간에 돈과 영향력을 한꺼번에 얻은 한국 디지털 주역들의 무분별하고 거친 행동은 스스로 정보통신 선진국인 대한민국 디지털 혁명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