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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 기자의 뫔길]種豆得豆… 故 방지일 목사의 마지막 큰 울림

입력 | 2014-10-17 03:00:00


생전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방지일 목사. 한국기독공보 제공

103세 국내 최고령 목회자로 10일 소천한 방지일 목사의 생전 마지막 설교 제목은 ‘종두득두(種豆得豆·콩 심은 데 콩 난다)’였습니다.

㈔방지일목사기념사업회(이사장 김삼환 목사)가 이날 발행한 ‘심은대로’라는 소책자 1면에 사진과 함께 이 내용이 실렸습니다.

마지막이라지만 사실 이 설교는 2012년 12월 이뤄진 것으로 사연이 있습니다. 개신교 방송인 씨채널이 경기 광주시 진새골사랑의집에서 진행된 녹화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 설교’라는 의미로 부탁한 것이라네요. 이후 고인이 간간이 강단에 섰지만 취지로 볼 때 마지막 설교로 봐도 무방할 겁니다.

고인은 이 설교에서 “외를 심으면 외를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둔다는 말과 같이 종두득두라는 말을 흔히 한다”며 “바울 사도도 갈라디아서에서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하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좋은 종자라도 그것이 알맞은 옥토에 떨어져야 결실을 30배, 60배, 100배 거둘 수 있다. 같은 종자라도 바탕이 좋지 못하면 그렇게 수확하지 못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고인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당부는 이렇습니다. “내 마음을 항상 잘 살펴서 돌은 골라 치워버려야 하고, 수분이 없으면 수분을 공급해야 하고, 굳었으면 부드럽게 다듬어가면서 옥토를 만들어서, 언제라도 씨가 떨어지면 가장 잘 자랄 수 있도록 늘 가꾸는 우리가 돼야 한다.”

평소 검소하게 생활해온 고인은 해외 방문 중 고령에도 꼭 이코노미석을 타고 호텔 방도 다른 사람과 같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룸메이트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는 목사 A 씨의 전언도 있습니다. 방 목사가 머그잔에 모닝 블랙커피를 먹으면서 각설탕을 15개나 넣는 걸 보고 깜짝 놀라 “장수에 해롭지 않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싱긋 웃으며 “단맛으로 먹지”라고 했는데 그 미소를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곁에서 지켜본 방 목사는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기도와 성경 암송 뒤 항상 갖고 다니던 노트북을 꺼내 독수리 타법으로 2시간 가깝게 e메일 체크와 답신을 했다고 합니다. 한글은 물론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로 언어를 변환해 세계 각지에서 온 메일에 대해 큰 글씨로 답변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그 메일 답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올해 초 인터뷰 요청을 메일로 보내자 방 목사는 정말 큼지막한 글씨로 “제가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 힘들어요. 다음에 꼭 뵙죠”라는 답신을 보내 온 기억이 납니다.

14일 한국기독교회장으로 치러진 장례예배에는 개신교계의 많은 목회자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평소 고인의 목소리가 특정 교단을 넘어 메아리친 것은 나이와 지위가 아니라 평생을 지켜온 경건한 신앙과 삶 때문이었습니다.

벌써부터 이제 쓴소리 할 개신교 원로가 없다는 걱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난다, 그 평범한 말에 목회자들이 귀를 열어야 할 때입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