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남 논설위원
당시 남한은 심리전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남한의 경제력이 월등한 데다 북한의 거짓 선전에 속아 넘어갈 만큼 국민이 순진하지도 않았다. 북한은 남한의 심리전이 계속되면 독재정권의 실상이 주민에게 전파될까 봐 전전긍긍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때가 왔다는 듯 대남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10월 4일 실세 3인방의 인천 방문→7일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남북의 함포 교전)→10일 삐라 살포용 비닐풍선 겨냥한 고사총 도발→15일 남북 고위급 군사접촉→16일 남북 접촉 내용 공개로 이어진 북한의 대남공세는 치밀한 전략에 따른 것이다.
북한은 NLL 남쪽에 멋대로 설정한 ‘서해 해상경비계선’ 침범 중단과 삐라 살포 중단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남북 합의를 기준으로 하면 북의 삐라 중단 명분은 강력하고, 남의 NLL 준수 요구는 허약하기 짝이 없다.
이쯤 되면 깨달아야 하지 않는가. 북한이 파놓은 함정에 남한이 빠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쪽 분위기가 현 정부를 비난하는 쪽으로 변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은 북한의 고사총 도발 이후 정부에 삐라 살포 중단을 촉구했다. 노무현 정부의 실세였던 문재인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은 “(정부는) 대화 분위기를 깨고 안전을 위협하는 대북전단 살포를 못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은 야당 주장에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남북의 함포 교전 기사에 북한 대신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댓글을 다는 누리꾼도 많다. 5·24 대북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까지 덩달아 커지고 있다.
북한은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미녀 응원단’을 보내 남한 사회를 ‘매혹’시키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북한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남한 상황에 고무돼 “나를 지지하는 남한 응원단이 적지 않구나” 하며 미소를 지을 것만 같다. 그의 귀에는 북한의 공세가 초래한 남남갈등도 자신을 지지하는 응원의 목소리로 들릴 것이다.
이제라도 북한의 노림수에서 벗어나려면 삐라 살포와 서해 충돌 방지를 다시 한 묶음으로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대북정책을 주관하는 당국자들이 안팎으로 불리해지고 있는 상황을 감지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