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들 생존 투쟁 백태
영화 ‘연가시’의 한 장면이다. 직장인들에게 ‘영업’은 영원한 ‘숙적(宿敵)’이다. 때로는 불법까지 저질러가며 영업활동을 펼친다. 단속이 강화되면 ‘불법’과 ‘합법’ 사이를 애매하게 넘나든다. 그렇지 않으면 직장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카드회사 영업사원은 “영업이란 단어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고 답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기업 407곳을 대상으로 ‘올해 인력 구조조정 계획 여부’를 조사한 결과 18.9%가 ‘계획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인력 구조조정 대상 1순위로 뽑은 직원은 ‘업무 성과가 부진한 직원’(46.8%)이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실적’은 곧 ‘생사’일 수밖에 없고 화살은 직장인에게 향하기 마련이다.
국내 자동차 회사의 영업사원 이모 씨(28)는 ‘셔터맨’으로 불린다. 돈 잘 버는 아내를 만나 하루 종일 놀다 아내의 매장 문(셔터)을 내리는 ‘셔터맨’이 아니다. 문을 열고 닫는 이른 새벽과 늦은 밤에 잠재 고객들의 문을 여닫아주는 ‘고달픈’ 셔터맨이다. 이 씨는 매일 오전에 서울 노원구와 도봉구에 있는 시장으로 가 가게 20∼30곳의 매장 오픈을 도와줬다. 세 달 뒤, 그는 처음으로 ‘차’를 팔았다. 이 씨는 “몸으로 때우는 것도 힘들지만 더 고달픈 건 이 모든 것을 견디며 열심히 해도 실적이 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없으면 내 돈으로라도 때워야지”…‘금전형’
최근 제약업계는 리베이트(상품을 구매한 사람에게 구매 금액의 일부를 되돌려주는 것)가 근절되면서 영업할 수 있는 수단은 줄어든 반면 영업 강도는 더 세졌다. 오래전부터 제약업계의 영업은 고되기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 한 제약사에서 6년째 영업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모 씨(33)는 최근 한 대형병원 의사의 기사 노릇을 하러 강원도 속초까지 갔다 낭패를 봤다. 교수가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한 것이다. 결국 20만 원이 넘는 대리기사 비용을 본인이 냈다. 김 씨는 “약국을 담당했을 때는 약사들이 간혹 반 알 처방하고 반 알 남은 걸 환불요청 하면 그때마다 내 돈을 내야 했다”며 “리베이트 단속이 심해지자 영업사원들이 사비를 털고 있다”고 말했다.
○ ‘사돈에 팔촌까지!’…‘인맥형’
가장 흔하고도 사건 사고가 많은 건 ‘인맥형’이다. “부탁이다. 제발 만원만 ㅠㅠ” 은행원 이모 씨(29·여)는 친구들 사이에서 ‘만원만’으로 불린다. 가입 건수를 늘려야 하는데 재형저축 최소 가입금액이 1만 원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입할 때마다 ‘만원만 넣어 달라’라는 부탁을 해 ‘만원만’으로 불리게 됐다. 영업 대상은 다양하다. 친척은 기본이고 친척의 지인이나 동네 빵집 주인까지 대상이다. 상황이 어렵다 보니 경쟁사 직원과 거래하는 일도 있다. 국내 한 카드사 직원 박모 씨(27)는 다른 회사 카드 직원을 알게 돼 서로 거래를 했다. 카드를 한 장씩 만들어주는 것. 프로모션 실적은 무조건 신규 가입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박 씨는 “이건 굉장히 고전적인 방식이다. 아무 은행에 들어가 ‘딜(거래)’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돌려 막기’ 방식도 있다. 먼저 지인들에게 신규 카드를 발급받도록 한 뒤 사용을 못하게 한다. 일정 기간 카드 사용 기록이 없으면 자동으로 휴면카드가 되기 때문이다. 휴면카드가 되면 새로 카드를 또 발급해 신규 가입자로 처리한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