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공연장 참사/거리에 도사린 추락위험] 서울시내 환풍시설 점검해보니
안전 무방비 환풍구… 일부에만 안전펜스 19일 동아일보는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위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와 환풍구 긴급 점검에 나섰다. 이날 서울 분당선 선정릉역의 한 환풍구 덮개는 트럭이 밟고 지나간 듯 정상 덮개보다 4cm가량 내려앉아 있었다(위 사진). 유리벽을 설치해 행인들의 진입을 막은 3번 출구 앞 환풍구와 대조적이었다(아래쪽 사진). 이 교수는 “간단하게 유리벽만 설치해도 환풍구 통행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내구성 취약…방치된 도심 속 환풍구들
본보 취재팀은 19일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와 함께 서울 강남구 선정릉역(분당선) 인근 환풍구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인도 폭의 3분의 2에 달하는 환풍구는 버스 정류장에 인접한 데다 주변에 학교가 많아 학생과 직장인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있다.
2호선 교대역과 5호선 애오개역 인근 환풍구도 상황이 비슷했다. 택시를 잡기 위해 시민들이 위태롭게 환풍구 위에 서 있는가 하면 발을 굴렀을 때 흔들림이 느껴지는 환풍구도 많았다.
환풍구의 구체적 설비기준이나 안전점검 규정이 없다는 점은 안전관리 부실을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국토교통부의 ‘건축물의 설치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보면 지하역사 등에 환기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환기설비 덮개의 재질이나 강도, 안전점검 실시 등에 관한 규정은 없다.
지하철에 적용되는 ‘도시철도건설규칙’도 외부에 노출된 배기구의 내구성이나 안전설비에 대해선 별다른 규정이 없다. 서울메트로 측은 “안전관리 및 단속 규정이 없는 것은 맞지만 m²당 350kg의 하중을 견딜 수 있게 설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설비기준은 통행량과 설치 장소에 상관없이 일괄 적용되고 있어 보행자가 몰리는 지역 환풍구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
○ 시민들의 ‘안전 불감증’ 종식돼야
이달 4일 서울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인근 환풍구에서는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직전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서울세계불꽃축제를 보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출구 인근에 위치한 환풍구 위로 우르르 올라갔기 때문이다. 행사를 기획한 광고대행사 관계자는 “시민 한 명이 (환풍구 위로) 올라가자 머뭇거리던 사람들도 뒤따라 올라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안전요원들이 환풍구 위로 올라간 시민들을 끌어내려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해 11월 3일에는 고교 1학년생(17)이 부산 해운대구 모 백화점 앞 공원에 있는 환기구에 올라갔다가 15m 아래 백화점 지하 6층으로 추락해 숨진 사고가 있었다.
환풍구는 주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환풍구 인근에서 불이 났다거나, 대규모 행사가 열릴 때는 시민들이 더 높은 곳에서 상황을 보기 위해 환풍구를 발판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안전요원만으로는 돌출 행동을 막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환풍구 관리의 제도적 보완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전 불감증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강홍구·홍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