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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설마’가 만든 비극… 세월호 겪고도 못고친 안전불감증

입력 | 2014-10-20 03:00:00

[판교 공연장 참사/세월호와 비교해보니]




19일 오후 경찰들이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앞 환풍구 추락사고 현장 주변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작은 철판을 덧대 시민들이 환풍구 밑바닥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했다. 성남=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세월호 침몰과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 6개월 간격으로 발생한 두 참사의 주범은 모두 안전불감증이었다. 각각 여객선사와 선원들, 주최 측과 진행요원들의 안전 의식 부재가 빚은 참변이었다. 의미 있는 변화도 있었다. 세월호 침몰 때와 달리 이번 추락사고에서는 초기 구조작업이 비교적 신속하게 이뤄졌다. 정부와 경기도, 성남시도 유가족 중심의 수습대책을 발 빠르게 내놓았다. 》

[1]사고 원인 닮은꼴

판교 공연前 현장 안전점검 제대로 안해… 관객 더 유치하려고 무대 위치 바꾸기도

안전의식 부재로 인한 ‘주의 소홀’이 세월호 비극을 낳았다. ‘설마’ 하는 안일한 생각들이 모여 사고를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는 평상시 부실했던 여객선 안전관리와 이런 허점을 노려 배를 불법 증축해 화물을 규정보다 많이 실은 선사의 이기심이 결탁한 결과였다.

오전 8시 48분, 급변침 이후 배가 기울기 시작하는데 선원들의 위기 대응력은 ‘0점’이었다. 선원들은 자신들만 대피하기에 급급했고 바로 옆 객실을 지나치면서도 “밖으로 나가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계속해 10대 학생들이 주축이 된 304명의 희생자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선실에 머무르다 변을 당했다.

17일 발생한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도 주의 소홀이 원인이었다. 사고 현장에 있던 관계자 38명 중 안전요원은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이 몰릴 줄은 알았지만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이다. 1.2∼1.9m(경사에 따라 차이) 높이의 환풍구 위에 올라가 공연을 관람한 시민들의 부족한 안전의식도 사고의 원인이지만 이들을 막을 방어펜스가 없었고 직접적으로 제지하고 내려오게 할 안전요원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행사 전 별도의 안전점검도 없었다. 사고대책본부는 “15일 행사장 인근을 점검하기는 했지만 행사장은 사면이 트여있는 소규모 광장으로 시설물이 없어 점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환풍기 점검 여부에 대해서도 “소방 관할이 아니다. 점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당초 환풍구는 무대 뒤쪽이어서 관객이 올라갈 위치가 아니었는데 행사를 주관한 이데일리 측이 이달 초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무대 위치를 변경해 달라”고 해 환풍구를 측면에 둔 사고 당시의 무대 위치로 변경됐다고 했다.

[2]사고 발생후 초동대처는

신고 9분만에 119 출동해 구조 나서… 세월호땐 우왕좌왕하다 골든타임 날려


6개월 전인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 세월호가 급변침한 후 표류를 시작할 때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관제 모니터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배에 탄 단원고생 최모 군(17)이 전남 119에 신고했지만 이 신고를 연결받은 해경은 “위도와 경도가 어떻게 되느냐”고 되풀이해 물었다. 이 목포해경의 연락을 받은 16분 뒤에야 진도 VTS는 사고를 인지했다.

구조 과정도 허점투성이였다. 사고 발생 40여 분 뒤에 해경 구조정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세월호와 교신하지도 못했고 선내 진입 없이 선외 구조에만 집중해 생존자를 더 구할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렸다.

사고 여부도 뒤늦게 파악하고 출동에서 구조까지 모든 면에서 허점을 보인 세월호 참사와 달리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는 사건 발생부터 구조요원의 출동, 구조까지 별 무리 없이 진행됐다. 소방당국은 사고 발생과 거의 동시에 신고를 접수하고 경찰과 성남시, 경기도에 신속히 내용을 전달했다.

사고 발생 9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119 구조대원들은 바로 로프를 타고 환풍구로 들어갔다. 그러나 철제 구조물들이 진입을 방해했다. 소방방재청 측은 “지하로 내려가다 보니 철제 구조물들이 중간 중간 걸려 있었고, 지하 벽 옆 주차장과 연결된 철제 구조물이 보여 그리로 진입하는 게 빠르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수직 구조보다 수평 구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후 철제 구조물을 절단하고 환풍구 덮개와 겹겹이 쌓인 사람들을 끌어낸 구조작업은 사고 발생 약 1시간 반 만인 오후 7시 35분에 마무리됐다.

[3]정부-관계기관 대응

피해자 가족들 일대일 지원… 세월호때 같은 혼선은 없어


세월호 참사가 이번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으로는 관계 기관의 신속한 대처를 꼽을 수 있다.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때에는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등이 저마다 대책본부를 따로 만들어 혼란만 가중시켰다. 이와 달리 이번 사고에서는 경기도와 성남시가 즉각 합동대책본부를 만들고 책임지겠다는 의사를 조기에 표시했다. 정부, 지자체의 대응도 이번에는 달랐다.

세월호 사고 당시 정부의 혼란은 사고 다음 날인 4월 17일 국무총리가 본부장인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를 구성했던 데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사고 후 이틀 동안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혼란을 없애기 위해 법에도 없는 국무총리 주재 대책본부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 당시 안전행정부가 설치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세월호 침몰 당일 오후 2시 “368명이 구조됐다”고 발표했다가 2시간 후 “164명이 구조됐다”고 정정하는 촌극을 빚었다.

판교 추락사고에서 경기 성남시는 사고 40분이 지난 17일 오후 6시 30분 시 재난대책본부를 만들었다. 이 대책본부는 오후 8시 25분 경기도·성남시 합동대책본부로 확대됐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투자 유치를 위해 독일을 방문했다가 사고가 알려지자마자 즉각 귀국 비행기를 탔다. 그는 18일 유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사고의 최종 책임이 나에게 있다”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중앙정부 차원의 대응도 빨라졌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사고 직후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즉각 사고 현장을 찾았다. 판교 사고 희생자 가족에게 전담 공무원을 붙여 일대일로 지원하는 방안도 세월호 당시 유가족 관리 소홀로 질타를 받았던 정부가 낸 아이디어로 알려졌다.

[4]유족들과 보상 협의는

판교 유족 ‘합동분향소’ 사양… “부모 잃은 아이들 챙겨주길”


“이번 사고로 인해 우리 사회에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저희가 원치 않습니다.”

18일 오후 5시부터 경기 성남시 분당구청에서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유가족 35명이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과 만났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가족이 참혹한 사고로 숨진 다음 날이었지만 이날 회의장에서 유족들의 고성이나 욕설은 들리지 않았다.

판교 사고 이후 사망자 유가족들이 보여준 침착한 사고 수습 자세에 눈길이 쏠린다. 유가족협의체 간사인 한재창 씨(41)는 이날 협의 후 본보 취재진과 만나 “사망자 16명의 가족 모두 이번 일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며 “보상과 별개로 장례 절차부터 진행한다”고 밝혔다. 사망자 홍석범 씨(29)의 발인이 19일 치러졌고 20일 5명, 21일 4명의 발인이 예정돼 있다.

한 씨는 “우리가 ‘얼마 이상을 달라’고 요구해 봐야 그것 역시 나랏돈”이라며 “경기도나 성남시에 무조건적인 보상 압박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유족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말했다. 또 “빠른 수습을 통해 이번 사고 처리를 참사 처리의 좋은 예로 남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판교 사고 유가족들은 합동분향소 설치도 거부했다. 한 씨는 “아직 세월호 사고 수습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까지 별도의 합동분향소를 만들 생각이 없다”며 “이번 사고가 사회적 논란으로 확대되는 것을 유가족들이 바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경기도와 성남시에 △자녀만 남은 가정에 대한 지원 △야근 중 사망한 희생자의 산재 처리 검토 등을 요구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성남=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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