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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출입문 ‘기대지 마시오’ 표시, 눈여겨본 적 있나요?

입력 | 2014-10-21 03:00:00

위험 경고문 무시하는 사회




대부분의 시민이 20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에스컬레이터의 손잡이를 잡지 않고 타고 있다. 안전사고를 우려해 붙인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라는 경고 문구가 무색하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환풍구 접근을 막는 경고 문구가 아예 없었던 점이 꼽히고 있다. 사고 후 서울 시내 일부 지하철 환풍구에는 시민들의 접근을 막는 경고 문구가 급히 부착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고 문구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안전사고를 봉쇄할 수 없다. 결국 시민들 스스로 문구를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의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본보 취재팀이 20일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경고 문구를 시민들이 얼마나 준수하는지 지켜본 결과 상당수 시민이 이를 무시했고, 결과적으로 안전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였다.

○ 곳곳에서 무시당하는 경고 문구들

20일 오전 8시 35분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역사 내 에스컬레이터 옆으로 ‘손잡이를 잡고 두 줄로 서세요’라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취재팀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 시민들을 10분간 관찰한 결과 60여 명 모두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게다가 이날은 비가 왔는데, 일부 시민은 손잡이를 잡지 않고 우산을 지렛대 삼아 에스컬레이터 위에 위태롭게 서 있기도 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에스컬레이터가 항상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경고 문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에스컬레이터는 전기·기계적 원인으로 언제든지 정지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역주행, 급정지 발생 시 손잡이를 잡지 않은 시민들이 차례로 넘어져 대규모 인명피해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서울 지하철 2호선 왕십리역에서는 전동차 출입문에 부착된 ‘기대지 마시오’라는 경고 문구를 무시한 시민들이 다수 목격됐다. 30여 분간 해당 역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살펴본 결과 20여 명의 탑승객이 전동차 문에 몸을 기댄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교수는 “이런 시민들은 갑작스럽게 열린 문 틈 사이로 몸이 빠지면서 승강장 쪽으로 넘어지는 안전사고를 당할 수 있다. 대비가 없는 안전사고는 더욱 큰 피해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경고 문구를 무시한 시민들은 주택가 인근에서도 발견됐다. 이날 오전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앞에서는 ‘출차주의’ 문구가 적힌 경고장치가 요란하게 경보음을 울려 대고 있었다. 그러나 주차장 앞 인도를 지나는 일부 시민은 발길을 멈추지 않고 유유히 걸어갔다. 경비원 A 씨(51)는 “현장에 가서 주의를 주면 오히려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 경고 문구 지키는 시민의식 필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서는 경고 문구 부착 등 제도적 보완뿐만 아니라 시민 스스로 안전의식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일 발표한 ‘안전의식 실태와 정책과제’에 따르면 시민들의 안전의식은 하락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올해 8월 5∼9일 5일간 20세 이상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했다.

‘우리 사회 안전의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0.9%는 ‘매우 부족하다’, 44.1%는 ‘다소 부족하다’고 답변했다. 연구원은 “해당 답변을 지수화한 결과 한국 사회의 안전의식은 100점 만점에 17점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2007년 유사한 조사 결과가 30.3점이었던 것에 비해 크게 후퇴한 것이다.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데 있어 최대 걸림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2%는 ‘안전의식·문화의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은 “시민들 스스로도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안전의식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이샘물·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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