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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손석희만 오보한 환풍구 사고

입력 | 2014-10-21 03:00:00


송평인 논설위원

손석희 씨는 지난주 금요일 오후 8시 JTBC 뉴스를 다음과 같은 앵커 멘트로 시작했다. “경기도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걸그룹 공연 도중 환풍구가 붕괴하면서 25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대부분이 안타깝게도 학생이었는데요.”

난 손석희 뉴스의 애청자는 아니다. 손석희 뉴스를 본방송으로 본 것은 아니고 트위터에서 “손석희 뉴스는 성남 참사 소식으로 1시간 반을 온통 채웠다…박근혜 소식으로 뉴스를 치장한 공중파보다 더 재난방송 같다”는 글을 읽고 관심이 가 스마트폰에서 ‘다시 보기’로 봤다.

손 씨가 뉴스를 시작한 오후 8시는 사상자 중 단 한 사람의 신원도 밝혀지지 않았던 시간이다. 그는 희생자를 학생으로 볼 어떤 근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희생자가 학생이라고 단정하면서 뉴스를 시작했다. 학생으로 추정된다도 아니었다. 그는 젊은 학생들이 희생됐다는 점을 이후에도 수차례 강조했다.

뉴스가 한 15분쯤 흐른 뒤 분당차병원에 나가 있던 기자가 35세 남성, 29세 여성, 4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사망했다며 사망자의 인적 사항을 처음으로 전했다. 손 씨에게서 “사망자가 학생이 아니네요. 안타까운 죽음이 더 있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왔다. 학생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망자도 있다니 안타까움이 더하다는 그런 반응이었다.

이후 일부 부상자 신원도 밝혀졌는데 10대는 없었다. 뉴스가 50분쯤 흐른 뒤 한 목격자가 전화를 했다. 목격자는 손 씨가 학생 피해를 중심으로 언급하는 게 불만이었던지 “학생들도 있긴 했지만 학생들보다 회사원들이 많았다”며 “수정해 주고 싶어 전화했다”고 말했다. 그 전에 환풍구 주위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어 퇴근길에 들른 직장인이 많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손 씨는 그제야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많다는 예단(豫斷)을 버린 것으로 보이는 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사망자 16명과 부상자 11명의 신원은 사고 당일 밤 12시쯤 돼서야 다 밝혀졌다. 10대는 사망자는 물론이고 부상자 중에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많은 방송사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다. 그것이 수정되기까지는 약 20분이 걸렸다. 손 씨가 잘못된 예단을 수정하는 데는 40∼50분이 걸렸다. 전원 구조 오보는 경찰 교신과 경기도교육청의 문자메시지 내용이 근거라면 근거다. 손 씨의 예단에는 그런 근거도 없다.

난 집이 분당이다. 사고 당일 오후 7시가 조금 넘어 걸그룹 공연 중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 걱정이 돼 전화를 걸었더니 다행히 집에 있었다. 포미닛이 온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 카톡에 학교 친구들 중 다친 사람이 있다는 얘기가 도는 건 없냐고 하니까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학생들이 공연에 간다면 몇 시간 전부터 가서 앞자리 차지하고 기다리지 환풍구 같은 데 올라가서 보지는 않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누구나 걸그룹 공연 중 사고가 났다면 학생들이 다쳤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기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예단을 갖고 현장에 접근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기자라면 예단은 머릿속에만 갖고 있지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취재에 들어가 보면 예단을 뛰어넘는 일이 늘 있기 때문이다.

그날 희생자를 학생이라고 단정한 방송사는 손석희 뉴스가 유일하다. 아나운서 출신인 그가 취재를 해본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다만 그는 뉴스 끝부분에 환풍구 붕괴 ‘사건’이라고 말했다. 분명 말실수다. 붕괴는 보통 사고이지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말실수에 숨은 진심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고를 사건으로 보고 싶었던 마음에 섣불리 예단을 말해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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