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논설위원
난 손석희 뉴스의 애청자는 아니다. 손석희 뉴스를 본방송으로 본 것은 아니고 트위터에서 “손석희 뉴스는 성남 참사 소식으로 1시간 반을 온통 채웠다…박근혜 소식으로 뉴스를 치장한 공중파보다 더 재난방송 같다”는 글을 읽고 관심이 가 스마트폰에서 ‘다시 보기’로 봤다.
손 씨가 뉴스를 시작한 오후 8시는 사상자 중 단 한 사람의 신원도 밝혀지지 않았던 시간이다. 그는 희생자를 학생으로 볼 어떤 근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희생자가 학생이라고 단정하면서 뉴스를 시작했다. 학생으로 추정된다도 아니었다. 그는 젊은 학생들이 희생됐다는 점을 이후에도 수차례 강조했다.
이후 일부 부상자 신원도 밝혀졌는데 10대는 없었다. 뉴스가 50분쯤 흐른 뒤 한 목격자가 전화를 했다. 목격자는 손 씨가 학생 피해를 중심으로 언급하는 게 불만이었던지 “학생들도 있긴 했지만 학생들보다 회사원들이 많았다”며 “수정해 주고 싶어 전화했다”고 말했다. 그 전에 환풍구 주위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어 퇴근길에 들른 직장인이 많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손 씨는 그제야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많다는 예단(豫斷)을 버린 것으로 보이는 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사망자 16명과 부상자 11명의 신원은 사고 당일 밤 12시쯤 돼서야 다 밝혀졌다. 10대는 사망자는 물론이고 부상자 중에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많은 방송사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다. 그것이 수정되기까지는 약 20분이 걸렸다. 손 씨가 잘못된 예단을 수정하는 데는 40∼50분이 걸렸다. 전원 구조 오보는 경찰 교신과 경기도교육청의 문자메시지 내용이 근거라면 근거다. 손 씨의 예단에는 그런 근거도 없다.
난 집이 분당이다. 사고 당일 오후 7시가 조금 넘어 걸그룹 공연 중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 걱정이 돼 전화를 걸었더니 다행히 집에 있었다. 포미닛이 온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혹시 카톡에 학교 친구들 중 다친 사람이 있다는 얘기가 도는 건 없냐고 하니까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학생들이 공연에 간다면 몇 시간 전부터 가서 앞자리 차지하고 기다리지 환풍구 같은 데 올라가서 보지는 않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누구나 걸그룹 공연 중 사고가 났다면 학생들이 다쳤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기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예단을 갖고 현장에 접근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기자라면 예단은 머릿속에만 갖고 있지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취재에 들어가 보면 예단을 뛰어넘는 일이 늘 있기 때문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