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중국과 일본 유력 인사의 청와대 방문은 한중관계와 한일관계의 현 주소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탕자쉬안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현직 국무위원이 아니었으나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했다. 반면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은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을 만나는 데 그쳤다. 야치 국장의 방한은 올해 1월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만들어진 이후 책임자로서는 처음이라는 의미가 있는데도 박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두 인사의 청와대 방문 결과도 뜨거운 한중관계, 차가운 한일관계 그대로다. 탕 전 국무위원은 다음 달 10,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기간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시 주석이 불과 3개월 전에 만난 박 대통령과 다시 정상회담을 갖는 것 자체가 중국이 한중관계를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하지만 김 실장과 야치 국장의 회동에서는 한일관계를 풀기 위한 구체적 성과가 도출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취임 이후 제대로 된 정상회담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아베 총리가 집권하자마자 제2차 세계대전 1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를 부정하지 않았더라면 한일관계가 장기간 냉각될 까닭이 없었다. 북핵 문제 등 공통의 관심사가 산적한 상태에서 동아시아의 핵심국인 한일이 장기간 대립하는 것은 양국의 국익 차원에서도 불행이다.
야치 국장은 청와대 방문에 이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을 만났다. 일본의 과거사 외면이 한일관계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아베 총리에게 있는 그대로 보고하길 바란다. 우리 정부도 APEC 무대에서 한일 정상이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일본 설득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일관계가 이대로 가면 국교 정상화 50주년인 내년은 축제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