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사회부장
무슨 뜻에서 한 얘기인지 모르겠으나, 동아일보가 이 기사를 보도한 것이 의외의 일인가?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권 부소장의 발언은 18일 대법원 산하 연구기관인 사법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학술강연에서 한 얘기였고, 하루 전날 강연 자료도 배포돼 있었다. 기삿거리가 된다고 판단한 후배 기자는 신문기자들이 다 쉬는 토요일에 일부러 권 부소장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권 부소장의 주장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행위는 ‘반인도적 범죄’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울 수 있는 범죄였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국제형사법이 우리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국제사회에서 법에 의한 지배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취지였다. 벌써 14년째 ICTY 재판관으로 일하고 있는 권 부소장의 시각이 보도가치가 없는 것이었을까. 필자는 그날 아침 동아일보를 빼고는 다른 어떤 신문도 이걸 보도하지 않았던 것이 의외로 느껴졌다.
올해 7월 6일 한국인으로서 국제재판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상현 ICC 소장, 권 부소장, 정창호 크메르루주 유엔특별재판소 재판관 등 3명과 한자리에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어렵게 모인 이 자리에서도 김정은 기소 문제가 화제가 됐다.
이 자리에서 권 부소장은 김정은 기소는 여러 가지로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김정은을 ICC에 기소하게 되면 남북 정상회담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한국이 ICC 협약국인 만큼 김정은은 체포해야 하는 대상이지 대화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ICC 재판관으로 일해온 송 소장은 내년 초에, 권 부소장은 내년 여름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예정이다. 두 명이 잇따라 임기를 마치게 되면서 당장 우리로서는 이들의 뒤를 이어 누군가 국제재판소에 진출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게 됐다. 그러나 10여 년의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곧 한국에 돌아올 이들을 우리 정부가 또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일반 법관 같았으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라는 최고 법관의 자리에 오르든지, 아니면 중도에 변호사 개업을 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하지만 국제재판관으로서의 경력은 변호사 개업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