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도 여풍이 불고 있다. 초기만 잘 넘기면 여자 혼자 시골생활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동아일보DB
“헐∼, 하녀 하나 데리고 사는 게 누군데…ㅎㅎ.”(아내)
이웃 동네에 사는 한 어르신 부부의 ‘황혼이혼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할머니가 일방적으로 황혼이혼 운운했는데, 지난해 겨울 화목겸용보일러를 설치한 이후 이 얘기가 쏙 들어갔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직접 땔나무를 해와 뜨끈뜨끈하게 방을 데워 주고, 할머니가 아픈 기색을 보이면 즉시 병원으로 데려간다. 폭설이 내리는 한겨울 제설작업도 물론 할아버지의 몫이다. 이 역시 시골생활에 있어서 남자의 역할을 보여주는 실례다.
특히나 시골로 들어온 지 1∼2년밖에 안 된 시골생활 초보 아내들은 땅과 집, 그리고 소득 등 경제적인 기반이 어느 정도 받쳐준다고 해도 남편 없는 전원생활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2013년 가을 전원주택을 지어 ‘4도3촌(4일은 도시에서, 3일은 농촌에서)’ 생활을 하다가 얼마 전 아예 시골로 이사한 B 씨(53)는 “시골생활은 늘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데, 남편 없이 여자 혼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산골생활 2년 차인 Y 씨(44)는 “만약 혼자 남게 된다면 다시 도시로 가겠다”고 했다. 심지어 시골에 정착한 지 14년이나 된 L 씨(39)조차도 “여자 혼자의 힘만으로 시골생활을 감당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여자 혼자서 시골생활을 하는 게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실제 주변에서 보면, 이미 그렇게 사는 이들도 드물지만 있다. 때론 이웃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농사도 짓고 다른 일도 하면서 안분지족하며 자립적으로 산다.
이뿐만이 아니다. 10여 년 전에 홀로 귀농해서 6611m²(약 2000평)에 달하는 농사를 홀로 짓는 여자 농사꾼도 있고, 도시에서의 전문성을 살려 초등학교 등에서 알바를 하며 귀촌생활을 즐기는 이도 있다. 이런 여성들의 특징은 이미 10년 안팎에 걸쳐 농촌에 살면서 잘 정착한 50대 중후반부터 60대 초중반이라는 점. 다만, 상대적으로 젊은 30, 40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한편 고령의 원주민 가운데는 홀로 살아가는 여성(할머니)이 꽤 많다. 이들은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며 먹을거리 대부분을 자급한다. 현금 소득이 거의 없지만 이전부터 안 쓰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지라, 그들에게 시골의 삶은 어렵거나 힘든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근래 들어 예비 귀농·귀촌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나 상담을 하다 보면 불과 몇 년 전에 비해 전원생활에 대한 도시 거주 여성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30, 40대도 꽤 눈에 띈다. 2013년 귀농·귀촌 관련 통계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지난해 귀농가구주의 여성 비율은 29.4%, 귀촌가구주의 여성 비율은 35.3%에 달했다. 여러 속사정이 있겠지만 생각보다 그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또 올 7월 말에 열린 ‘6차산업화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입상한 10개 농업경영체 가운데 여성 대표가 40%를 차지했다는 점도 향후 농촌에서의 여풍 현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초기 적응기간(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만 잘 넘긴다면, 이후 여자 혼자서 시골생활을 하는 것이 비록 힘은 들겠지만 불가능한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