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꼬대바람이 제법 차다. 스산하고 을씨년스럽다. 땅거미 어둑어둑 내리는 퇴근길. 매움하고 칼칼한 냄새가 발목을 잡는다. 그렇다. 요즘 한창 갈치 살집이 오동통 올랐다. 두툼하고 퉁퉁하다.
갈치는 이제 따뜻한 바다로 가서 겨울을 나야 한다. 제주나 거문도 앞바다가 안성맞춤이다. 고깃배들이 이때를 놓칠쏘냐. 갈치길목에 틀어 앉아 주낙을 드리운다. 갈치는 마침 야행성. 밤새 맑고 투명한 집어등 불빛이 수평선에서 느런히 출렁인다.
찌그러진 양은냄비나 만고풍상 뚝배기에 칼칼하게 조린 갈치국물 맛이 서리서리 배어 있다. 매운맛과 달큰한 맛이 깊게 스며든 무. 살강살강 깨물어지는 고소한 갈치 살점. 매콤달콤한 국물에 김 무럭무럭 갓 지은 밥을 비벼 먹는 맛이란….
골목은 늘 만원이다. 점심 땐 긴 줄이 늘어섰다. 길게는 40년 가까이에서부터 짧게는 20여 년까지, 10여 개 식당이 옹기종기 모여 ‘갈치 왕국’을 이루었다. 희락식당, 왕성식당, 중앙식당, 넝쿨식당, 전주식당, 호남식당, 우리식당, 이모네식당, 넥타이맨갈치식당….
맛은 엇비슷하다. 국물은 대부분 쌀뜨물을 쓰지만 멸치나 표고버섯으로 우려내는 집도 있다.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등의 양념에 갈치를 탕탕 토막 내어 센 불에 바글바글 끓인다. 냄비 밑바닥의 두툼한 무가 약간 탈 정도로 자글자글 찰방찰방 조린다.
갈치는 왜 평생 대부분 서서 지낼까. 왜 잠잘 때조차 머리를 위쪽으로 하고 있을까. 갈치도 ‘직립의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칼잠(갈치잠)을 잔다’는 말은 곧 ‘서서 자는 갈치’를 뜻한다. 갈치는 긴급 상황에서만 W자로 헤엄친다. 꼿꼿하게 서 있다가 한순간 실타래처럼 풀어져 도망친다.
갈치는 가시가 많다. 반칠환 시인은 ‘갈치조림을 먹으며’ 슬쩍 너스레를 떤다. ‘얼마나 아팠을까?/이 뾰족한 가시가 모두 살 속에 박혀 있었다니’ 어쨌든 갈치는 ‘뼈대 있는 집안’인 것이다. 그래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사는지도 모른다. 하기야 바다가 그렇게 넓은데도 평생 등 구부리며 사는 새우도 있다. 새우는 뭐가 그리 무서워 전전긍긍 불안해할까.
갈치는 긴 칼을 닮았다. 옛사람들이 ‘칼치’나 ‘도어(刀魚)’라고 부른 이유다. 도(刀)는 ‘외날 칼’이고, 검(劍)은 ‘양날 칼’이다. 일본에서도 ‘다치우오(太刀魚)’라고 한다. 역시 ‘칼(太刀) 이미지’다. 자산어보엔 허리띠 같다고 해서 군대어(裙帶魚)라고도 했다. 葛侈(갈치)는 ‘칡넝쿨처럼’ 길어서 붙은 이름이다.
갈치는 살아있을 땐 온몸이 눈부신 은백색이다. 몸통이 온통 은빛가루로 덮여 있다. 은빛가루는 구아닌 성분으로 독이 있다. 회로 먹을 땐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립스틱 광택재료로 흔히 쓰인다. 갈치 몸에 상처가 나면 은빛광택이 사라진다. 그물보다 낚시로 잡은 걸 더 치는 이유다.
갈치는 핏대다. 성질이 불같다. 낚시에 걸려 올라오는 순간, 제 성질을 못 이겨 금세 죽는다. 먹성도 좋다. 오죽하면 갈치꼬리를 잘라 갈치낚시 미끼로 쓸까. ‘갈치가 갈치꼬리를 문다’는 말은 갈치들끼리 서로 꼬리를 잘라 먹어서 나온 말이다.
음력 구월 스무아흐레. 내일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끼룩끼룩 기러기 울어 예는 서릿가을이다. ‘생선가시 대형’으로 떼떼이 날아가는 기러기가족. 맨 앞 아빠기러기가 맞바람에 밀려 자꾸만 허튼 날갯짓을 한다. 어디 가서 갈치나 한 토막 구워 먹을까. 저녁노을이 콩깍지 잉걸불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