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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박근혜의 개헌론 봉쇄, 김무성 ‘치고 빠지기’

입력 | 2014-10-22 03:00:00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간판만 바꾼 의원내각제?
국제화-FTA 시대에 외교와 내치 구분도 어려워
현실적으로 개헌 어려워도 대통령의 논의 봉쇄는 약속위반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대한민국 헌정사(史)에서 개헌은 독재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나 5·16, 12·12 같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서 또는 1987년 6월 항쟁 같은 혁명적 분위기에서 가능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현직 대통령과 그 권력을 붙잡으려는 미래 권력이 반대해 개헌 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국회의원 60%의 동의를 요구하는 국회선진화법으로 일반 법률도 통과가 어려운 형편에 개헌안의 국회 통과에 필요한 재적의원 3분의 2를 넘기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론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불거지는 것은 1987년 체제인 현행 헌법이 군사독재 정치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라는 대업을 이뤘지만 그 결함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5년 단임의 직선 대통령 중에는 퇴임 후 교도소에 가거나 자살한 대통령도 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을 교도소에 보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연관이 있다. 특히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일치하지 않는 것도 중대한 결함이다. 지방선거까지 합하면 선거가 없는 해가 드물다. 대통령 취임 후 2, 3년만 지나면 레임덕으로 접어들어 국정 수행의 동력이 떨어진다. 갈수록 레임덕의 도래 시기가 짧아지고 있다. 개헌을 통해 이런 국가적 손실을 감소시킬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의원내각제를 하는 나라가 대다수고 미국 같은 대통령중심제가 예외적이다. 그렇지만 한국 국민은 유신 이후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권리를 빼앗겼던 기억 탓인지 대통령직선제를 유달리 선호한다. 의원내각제를 유일하게 실시해본 2공화국은 민주당 신·구파 싸움으로 날을 지새우고 종국에는 쿠데타를 당해 단명했다. 한마디로 국민의 인기가 없는 의원내각제는 개헌의 마지막 관문인 국민투표를 통과하기 어렵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정치권은 의원내각제에 대한 국민의 비(非)선호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으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기웃거리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외교 국방권을 갖고, 총리는 의회에서 선출해 내치(內治)를 맡는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는 프랑스식보다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더 강하다. 결국 간판만 바꾼 의원내각제라고 볼 수도 있다.

국제화 시대에 외교와 내치의 구분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자유무역협정(FTA)은 외교인가 내치인가.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르면 정쟁이 더욱 심해질 우려도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나 의원내각제로 가는 것은 몰라도 이원집정부제는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것 같다.

개헌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일치하는 해에 하는 것이 수월하다. 그런 해는 20년마다 한 번씩 찾아온다. 1992년, 2012년의 기회를 놓쳤으니 다음 기회는 2032년으로 너무 멀다. 김형오 국회의장(2008∼2009년)을 중심으로 2012년 개헌을 준비해 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했지만 불발에 그쳤다. 이명박 대통령(2008∼2013년)도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이유로 반대했다. 개헌 논의가 국정의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똑같은 논리였다.

헌법에 규정된 현직 대통령의 임기를 개헌을 통해 강제적으로 단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헌법 개정을 하면서 부칙에 현행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후에 개정헌법에 의한 차기 대통령과 총리의 임기가 시작된다는 조항을 넣으면 된다. 문제는 대통령과 의원의 선출 시기와 임기를 맞추기가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친박(친박근혜)들은 김 대표가 내년에 개헌이 성사되기 어려운 것을 알면서도 대통령의 힘을 빼 대권가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개헌론에 불을 붙인다는 의심을 한다. 야당도 일단 찬동하는 듯하지만 정작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일치된 당론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으면 통일 지방자치 기본권 환경 노동 조항 등을 놓고 각종 이해집단들이 들고 나서 사회적 합의도 쉽지 않다.

과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내년에 개헌을 위해 재적의원 3분의 2를 엮어내는 대타협을 이룰지는 미지수다. 여야 합의로 개헌 논의 기구를 발족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도 대통령 후보 시절 4년 중임제 등을 포함한 개헌 추진을 공약했다. 청와대는 뒤늦게 김 대표의 ‘치고 빠지기’에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개헌론의 원천 봉쇄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대(對)국민 약속 위반에다 제왕적이라는 비판이 따를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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