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2위 금액’ 5년만에 탕진… 당첨금 영수증 보여주며 사기치다 쇠고랑
○ 5년 만에 산산조각 난 ‘242억 원의 행복’
갑작스럽게 부(富)를 거머쥔 김 씨는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할지 몰랐다. 주위에 복권 당첨 사실을 숨기려다 보니 자산관리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무계획적으로 주식투자에 거금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일부 재산은 부동산 구입과 병원 설립 투자금 등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서류상 문제로 병원 설립에 투자한 35억 원을 회수하지 못한 데다 주식투자 실패까지 겹치면서 2008년 말 당첨금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다.
○ 사기 행각으로 끝나버린 ‘재기 몸부림’
재기를 노리던 김 씨는 2010년 5월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A 씨에게 접근했다. 주식 전문가로 위장한 그는 “돈을 주면 선물옵션에 투자해 수익을 내주겠다”고 유혹했다. A 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로또 당첨금 원천징수영수증을 보여줬다. 주식으로 5000만 원을 잃어 상심이 컸던 A 씨는 선뜻 1억2200만 원을 건넸다. 그러나 주식 투자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김 씨는 전혀 수익을 내지 못했다. A 씨가 원금 반환을 독촉했지만 김 씨는 또다시 허세를 부려 위기를 넘겼다. 그는 “지인을 상대로 진행 중인 민사소송에서 이겨 15억 원을 받아오겠다. 소송비용 등을 빌려 달라”며 A 씨에게 소송 서류 뭉치를 보여줬다. A 씨는 또다시 김 씨에게 차용금 2600만 원을 건넸다. 그러나 김 씨의 소송 서류는 효력이 없는 문서였다. 당시 김 씨는 이미 소송에서 져 지인에게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두 번이나 김 씨에게 속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A 씨는 2011년 7월 김 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 소환 통보를 받은 김 씨는 곧바로 잠적했다. 이후 부동산중개업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찜질방을 전전하며 도피생활을 이어가던 김 씨는 악성 사기범 집중 수사를 벌이던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15일 강남구 논현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김 씨를 사기 혐의로 체포했다고 22일 밝혔다.
○ 로또 1등의 역설(逆說)… 패가망신 지름길?
복권 1등 당첨자가 불행을 겪은 사례는 김 씨만이 아니다. 올해 3월에는 13억 원을 수령했던 B 씨가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 뒤 절도행각을 벌이다 붙잡혔다. 지난해 7월에는 18억 원을 받은 C 씨가 사업 실패로 재산을 날린 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전문가들은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맹신과 이로 인한 삶의 목적 상실로 불행에 빠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로또 당첨자들을 연구해보면 기존 직업과 소비 구조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더 큰 행복을 얻는다는 결과가 나온다”며 “큰돈이 생겼다고 생활환경에 변화를 주기보다는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계획적으로 돈을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