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논의가 ‘국정의 블랙홀’이라는 청와대 예견이 맞았다. 끝없는 논란을 일으켜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점에서다. 어제는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개헌은 국회에서 제안할 수 있다”며 청와대 개입을 비판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개헌논의 발언(16일)을 그제 청와대에서 비판하자 문 위원장이 김 대표 대신 청와대에 화살을 쏜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 대표가 치고받다가 야당 대표의 헌법해석과 훈계를 듣는 처지가 됐으니 참으로 딱하다.
김 대표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바로 다음 날 “대통령께 죄송”이라며 꼬리를 내렸음에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실수로 언급했다고 생각지 않는다”며 직공(直攻)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김 대표가 개헌론을 선점하려고 ‘의도된 실수’를 저질렀다면, 청와대는 대통령 레임덕을 부추길 수 있는 ‘미래권력’의 몸집 키우기 드라이브에 쐐기를 박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김 대표 사과 뒤 나흘이 지난 시점에 청와대가 확인 사살하듯 분노를 표출한 것은 되레 개헌 논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불렀다. 차기 대선에 뜻을 둔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도 “대통령보다 국회의원들이 더 욕을 먹는 현실에서 의원들끼리 뽑는 총리를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다”며 개헌론 논란에 가세했다.
임기가 3년 이상 남은 청와대가 여당 대표와 함께 산적한 국정을 풀어나가는 데 온 힘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서로 힘자랑하듯 자극하고(김 대표) 짓누르는(청와대) 모습에 국민은 기가 막힐 뿐이다. 개헌 논란에서 드러난 집권세력 내부의 불신과 알력이 지속된다면 중요한 국정 현안이 지체되고, 장기불황 가능성마저 보이는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