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의한장면. 동아일보DB
김 병장은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버려야 한다는”이란 ‘난 알아요’의 랩 가사를 주문처럼 지껄이면서 군홧발로 후임병들을 걷어찼다.
이랬던 서태지가 얼마 전 나를 다시 소름 돋게 만들었다. 그가 5년 만에 내놓은 새 앨범의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을 듣던 나는 각종 대중음악장르가 뒤죽박죽된 당혹스럽고도 창의적인 이 짬뽕음악의 신나는 리듬 속에 숨겨놓은 섬뜩한 메시지를 들었던 것이다.
서태지가 직접 밝혔듯 ‘크리스마스와 할로윈’을 합친 제목의 이 노래는 우리가 산타라고 믿는 세상의 모든 권력이 사탕발림으로 우리를 흥분시키면서 사실은 우리를 약탈하고 착취한다는 섬뜩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특히 “밤새 고민한 새롭게 만든 정책, 어때. 겁도 주고 선물도 줄게. 온정을 원한 세상에. 요람부터 무덤까지. 난 안락함의 slave(노예)”라는 가사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수많은 정책이 온정을 갈구하는 힘없고 소외된 자들을 권력의 노예로 만든다는 살벌한 뜻으로도 해석되는 것이다.
‘권력이 갖는 선과 악의 두 얼굴’이란 무섭고 끔찍한 메시지가 신바람 나는 리듬과 귀엽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타고 흐르다니! 이는 마치 “여보. 당신을 내 목숨만큼이나 사랑해!”라고 남편에게 속삭이는 동시에 이혼서류를 들이밀며 재산분할 소송에 돌입하는 아내를 보는 것만큼이나 포스트모던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더욱 놀라운 장치는 이 노래에 사용된 극적 효과음이다. 결정적인 순간 “끽끽끽” 하는 바이올린의 짧고 날카로운 고음이 반복 삽입되는데, 이것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기념비적인 스릴러 영화 ‘사이코’(1960년)의 명장면에서 사용된 것이다. 한 여성이 모텔방에서 샤워를 하다 돌연 나타난 노파에 의해 난자를 당하는 순간 “끽끽끽끽” 하고 비명처럼 찢어져 나오는 바이올린 선율. 이는 실제론 여인의 몸에 칼이 닿는 장면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마치 관객의 살갗을 식칼이 파고드는 듯한 극도의 체감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가장 신나는 방식으로 공포의 메시지를 전하는 서태지의 역발상은 서스펜스 스릴러의 문법을 새롭게 쓴 히치콕에게서 이미 발견되는 것이다. ‘어둡고 비 오는 날 골목길에서 검은 우비를 입은 정체불명의 괴한이 식칼을 들고 쫓아오는 것’이 가장 무서운 순간으로 여겨온 기존 공포영화들의 문법을 히치콕은 180도 뒤집었다. 그는 말했다. “어두운 거리에서 죽은 고양이와 폐물들이 나뒹구는 것보단 해가 밝게 뜬 대낮에 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냇가에서 일어나는 살인이 더 흥미롭다.” 히치콕은 가장 안전하고 따스하고 아름답고 로맨틱한 순간에 잔혹한 살인이 천연덕스럽게 일어나는 모습을 통해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라도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공포심을 관객의 세포 속에 심어주었던 것이다.
“너 또한 날 관리하는 사람 중에 하나인지. 술병을 줄 세운 다음에야 툭 튀어나오는 우발적인 행동들을 방어하다가도 어쩔 땐 다 받아주는 완급조절은 완전 선수야 선수. 어쩌면 신의 영역.”
옳거니. 서태지가 개코에게 완전히 밀렸다. 서태지가 신곡 가사에서 직접 언급했듯 그 자신은 이제 “한물간 90년대 아이콘”인지 모른다. 더이상 담론의 시대가 아니다. 자신을 배신한 여자친구에게 시원하게 “마더파더” 하면서 욕설을 퍼붓고, 나이트클럽에서 새로운 여자를 꿰려 줄다리기하는 개코같은 내용이 대중가요의 주류이다. 서태지가 제아무리 권력과 시대를 비판하고 비꼰들 여전히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고 벤츠 타고 싶고 강남에 살고 싶고 연금 한 푼이라도 더 받고 싶은 작금의 세계에선 그저 씨알머리 없는 넋두리로만 들리는 것이다.
아, 이젠 누가 권력을 미워해주지? 나 혼자 걱정이다. 권력은 그 자체로 호러이거늘. 긴장해. 다들. 애초부터 당신의 몫은 없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