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혁신 '골든타임' 2부] <1>부패없는 대한민국, 지금 나부터/上 일그러진 자화상
최근 대기발령을 받고 중징계를 앞둔 도 실장이 건설사 대표와 서울 강남 유흥주점을 가고, 기업체 법인카드까지 갖고 있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국토부가 내놓은 공식 반응이다. 불과 일주일 전 서승환 국토부 장관을 비롯한 전 직원이 ‘부정부패 척결 결의문’을 채택하고 청렴서약식까지 했지만 부패 문제가 불거지면 정반대로 움직인다. 교과서대로라면 철저한 원인 조사와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하지만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하려고만 한다.
한국 사회에 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데는 비리가 드러나도 비리 당사자만 쳐내고, 정작 부패를 온존케 한 시스템과 업무 프로세스의 허점은 그대로 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여수시청 8급 공무원이 저지른 80억 원대 횡령사건. 허위 공문서를 작성해 공금을 11개 차명계좌로 송금하고, 남편이 횡령한 돈으로 부인은 사채업에까지 손댄 전대미문의 공무원 유용 범죄였다. 그러나 비슷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00년대 후반 수도권에서 지방세 수납담당 공무원 김모 씨가 3년간 공금 15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적발된 사례만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김 씨는 환급 결정권이 있는 계장이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계장의 컴퓨터에서 자신의 친인척과 동명이인 중에 거액의 지방세를 납부한 사람들에게 허위로 지방세 환급 결정을 내린 다음 자신의 컴퓨터에서 환급 계좌를 자신의 주변 인물 계좌번호로 끼워 넣는 수법을 사용했다. 당시 감사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김 씨가 7년간 해당 보직에 있어 감사가 확대됐어야 하는데 해당 직원이 자살할 것처럼 굴어 횡령액수를 15억 원 선에서 더 늘리지 않고 정리했다”고 털어놨다.
계좌번호 조회 권한만 있어도 충분히 업무가 가능한 김 씨에게 수정 권한까지 주어진 것이 불법행위가 손쉽게 이뤄진 이유였다. 환급결정이 계장 한 사람의 결정으로 가능하고, 판정의 적정성을 제3자가 확인하는 절차가 없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그런데도 시스템 점검이 이뤄지지 않아 유사한 범죄가 반복됐다.
B교육지원청 직원은 5년간 해외 파견 직원과 중도 퇴직자들에게 수당을 지급한다는 명목으로 허위 서류를 작성하고 차명계좌로 공금 2억7000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그는 가공인물을 설정해 수당을 청구했지만 아무도 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일선 공무원이 많은 업무량에 시달리고 동시에 지나친 정보와 권한이 주어지는 시스템도 부패의 원인이다.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절차를 전산화해 업무 로드를 줄이면서 모니터링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면 일선 현장의 부패를 줄일 수 있다”며 “클린카드가 공금의 부적절한 사용을 일부 줄여준 것처럼 행정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이상 징후 사전 감지 내부통제 역량 갖춰야”
최근 불거진 해군 구조함 통영함과 소해함 음향탐지기 구매 사업에서는 방위사업청 공무원 최모 씨가 적극적으로 관련 서류를 위조했다. 특정 업체가 검사 기준을 충족한 것처럼 제안요청서 일부를 칼로 오려내고 허위 내용을 옮겨 붙이는 수법을 사용한 것이 검찰 조사 때 드러났다.
이처럼 부정을 저지르려는 누군가는 정보를 조작하고 변질시킨다. 업무 처리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이상 징후를 포착해낼 수 있었다. 이 원장은 “2개 이상의 출처에서 원천이 다른 정보를 받아 비교 대조해 전달된 정보가 정확한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뜻하는 ‘대사조정’이 전혀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직원 처벌로 끝낼 게 아니라 정보처리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직 스스로 부패나 오류를 예방하고 내부통제 역량을 강화해 부패에 대한 저항력을 기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공기업·준정부기관 상임감사 직무수행실적 평가항목에 내부통제 기능 강화 노력과 성과를 포함하는 등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부패 진단 전문가가 부족하고 조직 스스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한 하나의 ‘장식품’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원장은 “현존하는 부패 진단 프로그램 상당수는 대형 회계법인 ‘업자’가 관계자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수준에 그친다”며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고 부패 진단의 중요성을 공유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관석 jks@donga.com·신동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