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재원 갈등] 정부-교육감 핑퐁게임 쟁점 분석
전문가들은 세수 부족 사태로 앞으로도 교육복지제도를 둘러싼 예산 갈등이 계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교육교부금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세수 부족으로 촉발된 누리과정 재원 갈등
문제는 2013년 세수가 당초 전망보다 8조5000억 원 부족한 것으로 뒤늦게 집계되면서 내년도 교육교부금이 올해보다 줄면서 생겼다. 정부는 매년 예상되는 세수의 20.27%를 교육교부금으로 지방교육청에 지급하고, 세수 정산 이후 세금이 예상보다 더 들어오거나 덜 들어오면 다음 연도 교부금에서 그 차이를 정산한다. 지난해 경기 침체로 국세 수입이 예상보다 줄자 정부는 올해 과다하게 지급된 2조7000억 원을 내년도 교육교부금에서 줄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방교육청이 받는 교육교부금은 올해(40조9000억 원)보다 1조4000억 원 적은 39조5000억 원으로 감소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의 시도 교육감들은 ‘중앙정부가 지원해주지 않는 한 누리과정 지원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며 얼마 전 ‘보육 디폴트’를 선언하고 나섰다. 교육감들은 정부가 누리과정을 시도 교육청 부담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시도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기재부 관계자는 “누리과정은 10여 년 전부터 추진됐고 충분히 논의됐다”라며 반박한다.
실제로 만 5세 어린이에 대한 무상교육은 1997년 ‘초중등교육법’ 제정으로 법적근거가 마련됐다. 이후 장기간 논의를 거쳐 2011년 누리과정 도입이 확정됐다. 2012년에는 여야 합의 등을 거쳐 누리과정 대상을 만 5세에서 만 3∼4세로 확대하기로 했다. 당시 정부는 유아교육법, 영유아보육법과 함께 교육교부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누리과정에 대한 예산을 교육교부금으로 편성하기로 했다.
기재부는 이 과정에서 교육부가 지방교육청과 수차례 정례회의를 해 재원문제를 논의한 만큼 지방교육청의 의견수렴 기회가 충분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누리과정은 국가시책사업으로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하며, 박근혜 대통령도 누리과정에 대해 국가책임을 약속했다”는 교육감들의 주장에 대해 기재부는 교육교부금 자체가 내국세의 일정 비율로 정부가 교육청에 지급하는 국가지원이라고 맞선다. 기재부는 “대통령 공약 역시 누리과정 어린이 1인당 교육비를 인상하겠다는 것일 뿐 별도로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누리과정 재원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내년 교육교부금 감소분을 메우기 위해 지자체가 지방채 1조9000억 원을 발행하면 이를 인수한다는 방침이다. 별도로 예산 심의 과정에서 발행되는 지방채의 이자 일부를 지원해주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교육청 요구대로 별도 예산을 편성하거나 교육교부금 규모를 늘리기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교육교부금이 내국세의 일정 비율로 지급하도록 법으로 정해진 예산인 만큼 세수가 덜 걷혔다고 임의로 늘려주면 예산배분 원칙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방교육청들은 교육교부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누리과정을 예정대로 진행하면 무상급식 등의 사업 진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감들이 올해 선거 과정에서 ‘무상교복’ ‘무상통학’ 등 각종 선심성 복지정책을 내놓은 상황인 만큼 교육청의 자체 예산절감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기재부의 지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금이 더 걷힐 때는 지방교육청들이 예정에 없던 사업을 만들어내는 등 낭비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교육교부금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중고교 학생 수가 2000년 795만 명에서 내년 615만 명으로 22.6%나 줄지만 같은 기간 교육교부금은 22조 원에서 39조5000억 원으로 79.5% 늘어나는 만큼 교육교부금 지급률을 낮추거나 저출산, 고령화 등의 대책을 마련하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 누리과정 ::
유치원, 어린이집에 다니는 3∼5세 어린이들에게 공평한 교육과 보육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2012년부터 국가가 공통으로 시행하도록 만든 표준교육 내용. 부모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나이에 따라 정부가 교육비 중 일정액을 지급한다.
세종=문병기weappon@donga.com·김희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