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를 신물 나게 본 것은 1980년대 후반 군 복무할 때다. 그때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조작된 인물이라고 선전하는 삐라가 주로 뿌려졌다. 김현희의 사진과, 김현희가 어린 시절 자기 모습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진의 귀 모습을 비교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삐라만 보고 있으면 김현희가 가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3년 MBC PD수첩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남편 심재환 변호사를 출연시켜 김현희는 가짜라고 주장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그 내용이 삐라에 나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삐라는 영어로 전단을 뜻하는 빌(bill)에서 나왔다.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뿌린 빌에 일본 사람들이 자기네 말로 조각을 의미하는 히라(片)를 결합해 삐라라고 불렀다는 설이 가장 그럴듯해 보인다. 삐라는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상대편의 무지를 이용해 선전 선동을 하는 데 쓰이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보가 차단된 상대편에게 진실을 알리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전에 일본 주민에게 대피하라고 알린 빌이 그랬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