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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삐라의 추억

입력 | 2014-10-27 03:00:00


난 어릴 적 대구 근방에 살았기 때문에 삐라는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을 서울 근처나 서울 이북에서 산 친구들 얘길 들어보면 삐라를 주워 파출소에 갖다 주면 경찰 아저씨가 기특하다고 연필도 한 자루씩 주고 그랬던 모양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겨울에도 아이들은 삐라를 줍는다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연필 한 자루가 귀하던 시절, 삐라를 보고 북한을 동경해 월북하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삐라를 신물 나게 본 것은 1980년대 후반 군 복무할 때다. 그때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조작된 인물이라고 선전하는 삐라가 주로 뿌려졌다. 김현희의 사진과, 김현희가 어린 시절 자기 모습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진의 귀 모습을 비교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삐라만 보고 있으면 김현희가 가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3년 MBC PD수첩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남편 심재환 변호사를 출연시켜 김현희는 가짜라고 주장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그 내용이 삐라에 나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삐라는 영어로 전단을 뜻하는 빌(bill)에서 나왔다.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뿌린 빌에 일본 사람들이 자기네 말로 조각을 의미하는 히라(片)를 결합해 삐라라고 불렀다는 설이 가장 그럴듯해 보인다. 삐라는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상대편의 무지를 이용해 선전 선동을 하는 데 쓰이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정보가 차단된 상대편에게 진실을 알리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 전에 일본 주민에게 대피하라고 알린 빌이 그랬다.

▷북한은 이제 삐라를 뿌릴 필요도 없다.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남한 사회에서의 심리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북한은 온라인에서조차 외부와 차단돼 있다. 여기에 심리전에서 남북한의 비대칭이 발생한다. 북한이 우리 군도 아니고 민간단체가 살포하는 삐라에 대해 선전포고 행위라고 주장하고 총으로 위협한다. 과거 북한이 그렇게 뿌려대던 삐라는 다 무엇이었는가.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