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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한영관 리틀야구연맹 회장

입력 | 2014-10-27 03:00:00

자비 털어 헌신 9년… 야구 꿈나무의 ‘키다리 할아버지’




푸른 가을 하늘과 녹색 잔디가 어우러진 야구장은 싱그럽기만 했다. 고사리 손으로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꼬마들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해맑아 보였다. 24일 박찬호배 전국리틀야구대회가 개막한 대전 한밭구장에서 만난 한영관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65). 그는 “내 손자가 3400명이나 된다”며 웃었다. 연맹에 등록된 선수 모두에게 피붙이처럼 애정이 많다는 의미였다. 한 회장이 이끄는 한국 리틀야구는 8월 미국에서 열린 월드시리즈에서 기적처럼 29년 만에 우승했다. 한국 어린이들의 선전은 연일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화제를 뿌렸다. 기자는 미국 연수 시절 만났던 뉴욕타임스 여기자의 축하 메시지까지 받았다.

○ 리틀야구팀 20개서 160개로 늘려

고려대와 한일은행 야구선수 출신인 한 회장이 연맹 수장에 오른 건 2006년의 일이었다. 성동고 동창인 당시 하일성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과 이광환 KBO 육성위원장의 권유가 있었다. “회장 취임 며칠 전 리틀야구를 보러 갔는데 화장실에 구더기가 기어다니더라. 학부모와 심판은 멱살잡이를 하고 대회는 감독들이 10만 원씩 내서 치르고 있었다. 괜히 맡았나 싶었다.”

무보수에 판공비도 없이 한국 야구의 미래를 위한 책임감만으로 뛰어든 한 회장은 팀 창단에 공을 들였다.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팀 창단을 유도했다. 시군구의 지원이 필요했다.” 아시아나항공, 휠라, 도미노피자 등 기업 후원도 이끌어냈다. 강원 속초시를 찾아가 대회를 개최하면 30억 원의 지역 경제 효과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역설해 장기 계약을 성사시켰다. 미디어 노출의 중요성을 강조해 TV 중계 계약을 했다. 한 회장이 전국을 돌며 발품을 판 덕분에 20개 남짓이던 팀이 160개를 넘었다. 이날 개회식에 참석한 박찬호는 “올해 70개 팀이 출전해 놀랐다”고 했다. 2개였던 연맹 주관 대회만도 올해 12개가 됐다. 야구 코치만 300명 이상 필요해 은퇴 선수의 고용 창출 효과도 얻었다. 독특한 야구 규정도 신설했다. “어깨 보호를 위해 투수는 6아웃까지만 던지게 하고 있다.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한 룰도 많다.”

팀과 대회가 늘면서 국내 리틀야구 수준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한 회장은 해외 원정을 갈 때 출장비는 자비로 처리하고 대신 그 비용으로 코치를 연구원으로 동행하게 해 전력 향상을 꾀했다. 월드시리즈 기간에 그는 홍보맨으로 변신해 승전보를 언론사에 알리는 일에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세계 제패는 거저 얻어진 게 아니었다.

○ 딸은 골프, 사위는 야구, 그럼 외손자는?

한 회장은 한때 ‘희원이 아빠’로 통했다. 일본과 미국 투어에서 모두 신인상을 차지한 골프선수 한희원(36)이 그의 둘째 딸이다. 국내 아마추어 시절 48승을 거두고 일본에서 대학을 마친 한희원은 2001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진출 후 통산 6승에 상금만 700만 달러(약 74억 원)를 넘겼다. 한희원의 남편인 손혁은 공주고 시절 박찬호, 임선동, 조성민 등과 투수 황금 세대로 이름을 날리다 고려대를 거쳐 LG 두산 등에서 뛴 뒤 TV해설가로 활약하고 있다. 스포츠 스타 커플인 이들은 2003년 결혼 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두고 있다.

한희원이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등과 한국 여자골프의 해외 무대 개척자로 성장한 데는 ‘원조 골프 대디’의 헌신이 있었다. 베스트 스코어가 4언더파일 정도로 골프 고수였던 한 회장은 “희원이에게 골프 시키기 전에 수영부터 3년을 가르쳤다. 근육 발달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희원은 체계적인 조기 교육 속에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야구 선수 사위를 본 배경에도 아버지가 있었다. “희원이가 고교 2학년 때 고려대 야구부의 오대산 극기 훈련에 보낸 적이 있다. 그때 혁이를 처음 봤다. 나중에 희원이를 데리고 미국 시애틀에 갔을 때 우연히 혁이도 거기에 있었다. 운명이 아닌가 싶었다. 희원이가 혁이랑 결혼하겠다고 해서 미국에서 우승하면 허락한다고 했더니 바로 우승하더라(웃음).”

한 회장은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4년 가까이 밴을 직접 몰고 다니며 딸의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했다. 그랬던 딸은 올여름 아들 곁을 지키는 엄마가 되고 싶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한 회장은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지도 한 장 들고 미국 땅을 누볐다. 고생 참 많이 했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됐다. 희원이가 프로가 된 뒤에는 싫은 소리 한 적이 없다. 진학, 결혼, 은퇴는 철저하게 본인 의사를 존중했다. 내 딸이지만 늘 꾸준했고 우직했다. 결혼과 출산을 하고도 계속 선수를 했다는 점에서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된 것 같아 대견스럽다.”

문득 외손자에게는 어떤 운동을 시킬지 궁금했다. 한 회장은 “아이 마음이 중요하지만 야구 하면 좋겠다. 한국 남자 골프선수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 내일을 향해 던져라

훈훈한 가족 얘기 속에 푸근한 할아버지로 돌아갔던 한 회장의 눈빛이 다시 이글거렸다.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과제를 물었을 때였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꿈을 이뤘으니 이젠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 지방자치단체, 대한체육회 등의 지원이 절실하다.”

전용구장 확충이 시급한 과제다. 한 회장은 화성시와 리틀야구 전용구장 건설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한 회장은 “전용구장 6개면이 완공되면 연령별 경기가 가능해진다.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도 보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맹은 내년 월드시리즈에 대비하기 위해 대만, 일본 전지훈련도 계획하고 있다.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부모의 욕심은 자녀의 장래에 큰 도움이 안 된다. 야구장은 놀이터이면서 학습의 현장이다.” 어느새 어둠이 깔리고 야간경기를 위해 야구장 조명탑이 환해졌다. 3시간을 넘긴 인터뷰도 좀처럼 끝날 줄 몰랐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