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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임우선]저커버그가 말했다,중국어로

입력 | 2014-10-27 03:00:00


임우선 산업부 기자

지난주 수요일 중국과 미국에서는 ‘중국어로 말하는’ 한 남자의 영상이 화제가 됐다. 영상 속 주인공은 바로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였다.

저커버그는 22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칭화대에서 강연을 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강연이라기보다는 중국 대학생들과의 만남에 가까운 캐주얼한 토크 자리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커버그는 이 자리에서 무려 30분 가까이 중국어로 말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커버그의 중국어는 얼핏 들으면 영어고 자세히 들어야 중국어로 들릴 정도로 어색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영어식 억양과 몇몇 문법 오류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유창하게 중국어로 표현했다. 청중 역시 연이은 함성과 박수로 그를 지지했다.

저커버그는 중국인들이 들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말도 많이 했다. 그는 “베이징을 사랑한다. 중국어를 매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또 “중국은 대단한(great) 나라”라며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에 대해서도 찬사를 늘어놨다. 샤오미에 대해서는 “매우 혁신적인 회사다. 정말 빠르게 발전했다”고 했다. 또 “텐센트의 위챗은 거대하며 타오바오는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정부가 페이스북을 차단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그는 ‘낮은 자세’로 임했다. 저커버그는 “우리는 세계의 다른 지역 사람들이 중국과 연결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중국의 매사추세츠공대(MIT)라고 불리는 칭화대 경제관리학원 자문단에도 합류했다.

저커버그의 중국어 실력은 그의 아내와 무관하지 않다. 그와 2012년 결혼한 부인 프리실라 챈은 중국계 미국인. 저커버그는 처가 식구들과 소통하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장 외신들은 저커버그의 중국어 강연과 그 내용에 대해 “중국 시장을 잡기 위한 스킨십 행보”라는 분석을 내놨다. 중국 정부가 페이스북을 차단하는 사이 현지에서는 웨이보, 위챗 등 중국 국적 소셜미디어가 급성장하고 있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저커버그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중국 사로잡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분석을 보며 어쩐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 한국을 다녀간 저커버그의 행보와 비교돼서다. 2주 전 한국에 왔던 저커버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고 반도체 생산 라인을 돌아본 뒤 바로 한국을 떠났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들에 따르면 사진 촬영조차 제한됐다는 후문이다. 이전 방한에서도 그는 대통령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올 초 기준으로 한국의 페이스북 월 활동 사용자 수는 1300만 명에 이른다. 페이스북은 모바일 시장에 특화된 한국을 좋은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상당한 모바일 광고 수익도 누리고 있다. 그 사이 싸이월드 같은 한국산 소셜미디어 서비스는 설 자리를 잃었다. 막대한 시장을 등에 업고 자국 기업도 지키면서 저커버그의 구애를 받는 중국이 조금은 부러워졌다.

임우선 산업부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