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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면적 69배 녹색바다… “미래식량자원 팜오일 캔다”

입력 | 2014-10-27 03:00:00

[한국기업 글로벌 戰場을 가다]<8>LG상사 ‘인도네시아 팜농장’




21일 LG상사 인도네시아 팜농장 내 화재감시탑에 함께 오른 최재광 차장이 “이곳이 한눈에 가장 넓은 면적을 볼 수 있는 장소”라며 농장 규모를 알려줬다. 스카다우=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이 광경을 보고 있으면 그 어떤 부호도 부럽지 않습니다.”(최재광 LG상사 인도네시아 팜농장 차장)

21일 인도네시아 서부 칼리만탄 주(州) 스카다우 군(郡)에 있는 LG상사 팜농장. 농장 경치를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화재 감시탑에 현지 직원과 함께 올랐다. 지상 20m 높이의 감시탑에 오르자 사방으로 펼쳐진 팜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녹색 바다를 보는 듯했다. 동행한 최 차장은 “지금 보이는 면적은 1500ha(약 453만 평)로 전체 식재 면적의 7분의 1에 불과하다”며 “이곳에 오르면 농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미래 식량자원인 팜오일

LG상사 팜오일 생산 공장에서 한국인 직원인 김교윤 씨(오른쪽)가 현지 직원과 함께 갓 짜낸 팜오일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LG상사는 2010년 1월 인도네시아 현지의 ‘PT. 파르나 아르고마스(Parna Argomas)’를 인수하며 팜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2012년에는 연산 4만5000t 규모의 팜오일 생산공장을 농장 안에 지었다. 당시 삼성물산, 대상 등 한국 기업들이 먼저 인도네시아 팜 사업에 진출해 있었지만 자체 농장과 공장을 갖추고 직접 운영한 기업은 LG상사가 처음이었다.

LG상사 팜 농장의 총면적은 2만 ha(약 6050만 평)로 서울 여의도 면적(약 2.9km²·290ha)의 69배에 이른다.

LG상사는 2000년 무역업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판단 아래 자원 개발로 눈을 돌렸다. 그때 석탄, 석유, 비철 등과 함께 주목한 게 ‘미래의 식량 자원’으로 떠오르던 팜오일 사업이었다.

팜오일은 팜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식물성 유지다. 식용유, 화장품, 바이오디젤 등의 원료로 쓰인다. 팜오일로 만든 식용유는 전 세계적으로 식물성 기름 가운데 가장 많이 소비되는 기름이다. 지난해 기준 세계 식물성 기름 수요량(1억6500만 t)의 35%가 팜오일로 한국인에게 익숙한 대두유(27%)와 유채유(15%)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최근 인도, 중국, 동남아 등 신흥국 중심으로 팜오일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전망도 밝다. 2009년 4600만 t이던 세계 팜오일 수요는 지난해 5700만 t으로 늘었다. 올해에는 6100만 t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강의웅 ‘PT. 파르나 아르고마스’ 법인장은 “경기 변동과 상관없이 매년 팜오일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한 번 심은 팜나무에서 최대 25년 동안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데다 연중 생산이 가능해 오랫동안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 땀 흘려 익힌 노하우가 경쟁력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보고 선뜻 팜오일 사업에 진출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팜나무를 심으면 열매를 맺기까지 평균 4년이 걸린다. 강 법인장은 “매출 없이 이 기간을 버티는 게 관건”이라며 “통상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약 7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LG상사는 팜농장을 인수한 지 4년째인 지난해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했다. 현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고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직원들을 밀착 관리하며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공을 들인 덕분이다.

2010년 처음 팜 사업에 진출했을 때 팜농장 직원들조차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품을 만큼 농장 상태가 엉망이었다. 이전 농장 주인이 관리를 잘하지 않은 탓에 도로는 진입이 어려울 만큼 파손되어 있었다. 특히 현지 직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10명 남짓한 한국인 직원이 1500명이 넘는 직원을 일일이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LG상사 팜농장은 현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생산량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겼다. 일부 직원이 목표량을 맞추려고 익지도 않은 열매를 따거나 비료를 강물에 풀어버리는 등 꼼수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강 법인장은 “이후 덜 익은 열매를 수확하면 페널티를 주기로 하는 등 여러 차례 제도를 보완해 나갔다”고 말했다.

높은 이직률은 모든 직원에게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서서히 낮춰 나갔다. 강 법인장은 “직원 숙련도가 생산성에 직결되는 만큼 맨 먼저 숙소에 투자했다”며 “서부 칼리만탄 지역 팜농장에서 직원 숙소만큼은 우리가 최고”라고 자신했다. 이어 “지난 2년간 체질 개선 덕분에 2010년에 비하면 생산성은 2배 가까이 향상됐다”고 덧붙였다.

○ 2016년에는 생산량을 두 배로

LG상사는 농장 인근 주민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 본사를 통해 수집한 헌옷과 신발을 모아 주민들에게 기증하는 행사를 가졌다. 올해 안으로 마을에 있는 목조 다리 3개를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해줄 계획이다. 장학금 지원, 지하수 개발 등 다양한 주민 지원활동도 벌이고 있다.

LG상사가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는 지역 주민들과의 원만한 관계가 안정적인 팜농장 운영에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지방 정부로부터 농장 운영 허가를 받았더라도 지역 주민 거주지나 경작지에 대해서는 회사가 일일이 토지 보상 협상을 벌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마찰이 생겨 무력 충돌로 번지는 경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공헌 활동과 인근 마을에 연락소를 설치하는 등 관계 개선 노력을 꾸준히 한 덕분에 사업 초기에 비하면 주민과의 관계가 크게 개선됐다”면서도 “여전히 지역 주민을 상대하는 업무는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털어놨다.

LG상사는 2016년 현재 팜오일 생산능력의 두 배 수준인 연간 10만 t 생산을 목표로 내년 중 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다. 또 팜농장의 환경과 안전 관리를 강화해 팜농장 관련 국제 인증을 획득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가 주는 팜농장 관련 인증 획득을 앞두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제품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강 법인장은 “최근 중국 기업들이 자본을 앞세워 인도네시아 팜농장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들과 경쟁하려면 팜오일 생산량을 늘리는 것을 더이상 늦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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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등 주2회 어학 공부


21일 LG상사 팜농장 내 회의실. 한국인 직원들이 현지 영어 교사가 진행하는 인도네시아어 수업을 듣고 있다. 스카다우=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21일 LG상사 인도네시아 팜농장 내 회의실에서는 인도네시아어 강의가 열렸다. 인도네시아어가 서툰 한국 직원들을 위해 현지 영어 교사를 초빙해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강의에는 올 7월 이곳으로 부임한 박정민 씨(27), 올해 3월 입사한 김교윤 씨(25)와 박성수(27), 류재용 씨(27) 등 4명이 참석했다. 인도네시아어를 전공한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팜농장에 오기 위해 처음 인도네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한 이들은 매주 두 차례씩 진행되는 강의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이들은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도네시아어가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팜농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은 모두 12명. 현지 직원 1500여 명을 관리하고 매일 수백 t의 팜오일이 차질 없이 생산되도록 관리 감독하는 게 모두 이들의 몫이다. 그렇다 보니 이제 막 입사한 신입 직원에게도 막중한 업무가 주어진다.

인도네시아어를 배운 기간이 가장 짧은 박 씨는 강의를 듣는 직원 가운데 ‘에이스’로 꼽힌다. 팜농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구매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현재 업무에 필요한 인도네시아어는 막힘없이 구사한다. 그는 빠른 언어 습득의 비결로 ‘절박함’을 꼽았다.

박 씨는 “역할은 막중한데 말이 통하지 않아 A4용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인도네시아 직원들과 회의를 했다”며 “언어도 못하는데 나이도 어리다 보니 인도네시아 직원들로부터 무시를 당한 적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한동안 밤잠을 설칠 정도로 스트레스가 컸다”고 털어놓았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강의에서 한국어는 들을 수 없었다. 질문을 할 때도 영어를 써야 했다. 특히 입사 동기인 김 씨와 박 씨가 가장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김 씨는 “영어로 묻기 어려운 질문은 퇴근 후 선배들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7개월 동안 이들을 가르친 아르판디 씨는 “실력이 느는 속도가 놀라울 정도”라며 제자들을 치켜세웠다.

스카다우=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