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제작자 팀 맥팔레인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
모든 것이 완벽한 텐트극장에서 공연이 시작됐고, 우리 뮤지컬 역사를 새로 쓸 ‘빅탑 캣츠’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티켓도 매진,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공연 시작 이틀 만인 9월 12일 태풍 매미는 야속하게도 텐트극장을 휩쓸었다. 매미가 지나간 공연장은 골조만 남긴 채 처참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남아 있었다.
배우들과 스태프는 우왕좌왕하고, 나 역시 참담한 심정만 들 뿐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 캣츠 빅탑씨어터 작품을 총괄하는 호주 측에 문의해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의논해야 했다. 그때 난 스태프들에게 “빠른 시간 내에 다시 공연을 할 테니 나를 믿고 따라 달라”고 했다. 체류 비용을 아껴야만 했던 나는 그들에게 “공연을 다시 할 수 있을 때까지 호주로 휴가를 가라”고 부탁했다.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내 뜻을 전하자 당시 RUG(리얼리유스풀그룹) 아시아 총괄 회장이었던 팀 맥팔레인은 “설, 난 너를 믿어”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스태프들에게 “미스터 설이 하라는 대로 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날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니. 1990년대 중반 ‘오페라의 유령’을 하기 위해 처음 그를 만났을 때 “한국이라는 나라도 뮤지컬을 하느냐”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가 날 믿는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의 한마디는 내게 엄청난 믿음과 힘과 용기가 됐다. 나 또한 그 덕분에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반드시 공연을 올리겠다고 매체와 지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약속을 했다. 맥팔레인이 나를 믿어주었듯 그 다음 공연 예정 장소였던 대구의 관객들도 예정보다 2주나 늦어졌지만 공연을 기다려 주었고, 환불을 원하는 관객은 없었다.
당시의 태풍으로 인한 빅탑 사건은 CNN을 비롯한 여러 언론을 통해 세계에 전해졌고 브로드웨이에까지 알려지면서 난 일약 유명 인사(?)가 됐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죽지 않는다는 뜻의 ‘꼬리 아홉 개 달린 고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프로듀서는 신뢰를 주는 것이 생명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작품의 제작에 참여해야 하는 스태프와 배우, 투자자, 협력사 등 모두에게 믿음을 주어야 공연이 제작될 수 있고, 관객에게도 제작자의 확신이 전해져야만 공연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 난 널 믿어’, 이 말은 나에게서 기적을 이루어냈다.
그의 말 한마디가 수많은 실패와 시련을 견디고 지금까지 이 일을 즐겁게 하는 계기가 됐다. 나 역시 그와 함께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믿고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