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전문기자
최근 사석에서 만난 군 고위 당국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도발과 화해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북한의 대남전술 실체를 현미경의 시각으로는 절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북한의 화전(和戰) 양면 전술은 갈수록 극단을 치닫고 있다. 최고 실세 3인방의 전격 방남 및 2차 고위급 접촉 합의 직후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격전과 대북전단 사격 도발, 또다시 남북 군 당국 접촉에 이은 군사분계선(MDL) 총격 도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북한의 ‘기습 이벤트’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북한의 의도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도 갈팡질팡한다.
정부는 원칙을 지키는 의연한 대처를 강조했지만 ‘현상’은 그 반대다. 북한의 잇단 돌출 행동에 허둥대고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상대방(북한)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비공개로 남북 군 당국 접촉을 추진하다 북한의 뒤통수 치기식 폭로에 농락까지 당했다. 남북 간 협상 전술과 양태가 ‘아마추어(남)’와 ‘프로(북)’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앞둔 ‘기싸움’에서 남한이 ‘판정패’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북한이 최근 군사당국 접촉에서 집중 제기한 서해경비계선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남북 군 당국 접촉에서 ‘예민한 선과 수역’을 서로 넘지 말자고 제안했다. ‘예민한 선’은 그들이 NLL 남쪽에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경비계선을, ‘예민한 수역’은 서해경비계선과 NLL 사이의 수역을 의미한다. 서해 긴장 완화를 빌미로 NLL 무력화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2차 고위급 접촉은 ‘NLL 무력화‘를 노린 북한의 사전 정지 작업이고, 서해경비계선은 그 지렛대일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서해경비계선 관철은 2011년 사망한 김정일의 유업(遺業)이기도 하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서해경비계선을 내세워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NLL을 포기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우리가 주장하는 군사경계선에서 NLL까지 물러설 테니 그 사이를 공동어로구역이나 평화수역으로 하자”며 통 크게 양보하는 모양새까지 취했다. 하지만 남측이 거부하자 화해 무드를 깨고,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NLL 긴장 극대화에 ‘올인(다걸기)’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NLL 흔들기’는 더 대담하고 과격해졌다. 북한은 2012∼2013년 서해 NLL과 서북 도서 인근 북측 지역에 대대적인 포병전력과 진지 구축작업을 완료했다. 지난해 김정은은 목선을 타고 서북 도서 코앞인 장재도와 무도까지 내려와 “남측 함정이 영해를 침범하면 수장시키라”고 지시했다.
올해 3월과 4월, 7월에는 NLL 인근 해상을 향해 수백 발의 해안포와 방사포를 퍼붓고, NLL 남쪽에서 초계임무 중이던 아군 고속함을 향해 포탄을 발사했다. 올해 서해경비계선을 넘어오는 한국 함정에 대한 경고통신도 지난해보다 250배 이상 폭증한 1000여 차례에 이른다. 최근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은 아군 함정의 경고사격에 맞사격으로 대응하는 등 해상 교전까지 불사하고 있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