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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해외서 유심칩 도난당한 두 친구… ‘요금폭탄’ 차이는 왜?

입력 | 2014-10-30 03:00:00

“도난신고 안한 피해자 과실” vs “해외통화 급증에 직권 정지”
KT 768만원… SKT 270만원




‘768만 원’ 요금폭탄의 악몽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 한복판 보른 지구에서 시작됐다. 악명 높은 바르셀로나 소매치기에게 회사원 구모 씨(33·여)가 봉변을 당한 건 지난달 26일 밤. 소리 없이 다가온 그들은 타파스(스페인식 전채요리)를 먹고 호텔로 함께 돌아오던 회사 동료 송모 씨(29·여)의 손가방을 홀랑 턴 뒤 달아났다.

이때 구 씨와 송 씨는 손가방에 넣어둔 스마트폰 유심칩들도 함께 도둑맞았다. “해외에선 그 나라 통신사의 유심칩을 사서 쓰는 게 경제적이다”라는 말을 들은 이들이 국내에서 쓰던 유심칩을 빼놓고 현지에서 산 유심칩을 스마트폰에 끼워 해외 통신망을 이용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도 아니고 유심칩을 잃어버린 게 큰 문제가 될까’ 하는 생각에 분실신고를 미룬 구 씨 일행은 일주일 더 여행을 즐기고 이달 4일 입국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새 유심칩을 구입하러 간 KT 서비스센터에서 들을 수 있었다. 구 씨에게 9월 한 달간 쓴 휴대전화 요금이 무려 768만8740원이나 나온 것. 소매치기 일당이 구 씨의 유심칩을 이용해 스페인에서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지로 사흘 동안 국제전화를 269통이나 마구 쓴 결과였다.

구 씨는 “도난당한 유심칩이 범죄에 이용된 게 명백하고 유심칩 도난의 심각성을 알리는 통신사의 고지가 없었다”는 이유로 KT 측에 요금 감액을 요청했다. 하지만 ‘약관상 유심칩 도난을 신고하지 않은 고객 과실이 100%’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송 씨의 상황은 180도 달랐다. 도난 당일 송 씨의 해외 통화량이 비정상적으로 급증하자 SK텔레콤은 약 20시간 만에 통신사 직권으로 휴대전화 사용을 정지시켰다. 그 덕분에 송 씨의 피해 금액은 270만 원으로 막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송 씨는 “유심칩 분실의 위험성 고지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30% 정도 요금을 감면받았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해외에서 도난 등 범죄로 인해 전화요금이 수십만 원씩 급등했을 때 본사에서 직접 휴대전화 사용자의 신원을 확인한 뒤(전화를 직접 걸거나 문자로 확인) 본인이 아니면 사용을 정지시키는 매뉴얼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가입자 수만 1500만 명에 이르는 KT는 이런 매뉴얼이나 위험 방지 규정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KT 관계자는 “(구 씨가) 유심칩 도난을 제때 신고하지 않았고 비밀번호도 걸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 과실이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사연은 정말 안타깝지만 규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천효정 채널A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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