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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회동 뒤 “개헌 얘기 없었다”며 국민 속인 靑-여야

입력 | 2014-10-30 03:00:00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어제 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직후 회동한 자리에서 개헌 문제가 제기됐으나 이를 숨겼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국가 운영의 틀을 결정하는 개헌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정치권이 이렇게 경솔하게 다뤄도 되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이날 회동 직후 여야 정책위의장은 15개 항목의 회동 내용을 전하며 “개헌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2시간여 만에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꽤 시간을 할애해서 개헌 부분에 관한 말씀이 있었다”고 밝혔다. 결국 양당 관계자들은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회동 자리에서 “근본적인 정치 개혁을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며 개헌론을 꺼냈고, 같은 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개헌에도 골든타임이 있다”며 거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여야는 당초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논의할 사항이 많은 만큼 개인적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오늘 개헌 논의는 없던 것으로 하자”고 제안한 것에 동의했다고 한다. 1년 1개월여 만에 성사된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회동의 의미가 개헌 논의로 덮여 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여야 지도부 사이에 물밑에서 오간 정치 현안에 대해 결론이 날 때까지 발표를 미루는 합의가 지켜지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여야 간에는 회동 뒤에 서로 딴소리를 하며 뒤통수를 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버렸다. 여야 수뇌부의 정치적 밀담이 있었다 해도 이를 공개하지 않고는 소속 당 국회의원들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어진 탓이 크다. 허약한 리더십과 대화 상대에 대한 불신이 빚어낸 현상이다. 그러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야당은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봉쇄하는 것은 월권”이라며 박 대통령을 비판했었다. 또 여당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국정 운영 발목 잡기’라고 공격했다. 이랬던 여야가 박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분명히 오갔던 개헌 얘기를 “없었다”며 국민을 속이려 한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최근 “개헌은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며 논의 불가를 거듭 강조했던 박 대통령이 이날 개헌 얘기가 나왔는데도 미소만 지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자신의 입장에 대해 정치인들 앞에서 당당히 밝히고 설득하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의 본심이 무엇이냐는 의문을 부를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여야가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 꺼낸 말과 뒤돌아서 하는 말이 다르다면 상호 신뢰는 쌓일 수 없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