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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현대사회 기본권 중 기본권이다

입력 | 2014-10-30 03:00:00

[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2014년 3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KT 개인정보 유출 공익소송 제기 기자회견. 최근 금융회사와 통신사들의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로 정보의 수집 보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동아일보DB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A 씨는 학창 시절에 당한 사고로 한쪽 눈이 파열돼 실명했다. 결국 의안을 넣었고, 그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 후 공무원이 됐고, 공직을 천직으로 알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4급으로 승진한 며칠 후 병역 사항을 신고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4급 이상 공무원은 본인과 직계비속의 병역사항을 신고해야 하며 이를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해야 하는 법률이 있었기 때문이다. A 씨는 비록 부끄러운 사실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한쪽 눈이 의안임을 동료들에게 밝히지 않았는데, 이를 공개해야만 하는 것에 당혹스러웠다. 2005년 A 씨는 이 법이 사생활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2007년 이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민 모두가 알아야 하는 공직자의 공직 활동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 공직자 개인의 인격과 밀접하게 결부된 질병이나 심신장애 사유를 일률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것은 사생활 보호라는 헌법적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법은 개정돼 지금은 4급 이상 공무원이라 할지라도 당사자가 비공개를 요청하면 질병을 공개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우리말보다는 ‘프라이버시(Privacy)’란 영어 단어가 더 익숙한 사생활의 자유는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사회변동과 함께 등장한 현대적 기본권이다. 농촌을 중심으로 서로 숟가락 수까지 알고 지내던 시절과는 달리,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이웃으로 살아가면서 혼자만의 사적 공간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집에서 속옷만 입고 뒹구는 일상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관찰되거나, 가족들만 알고 있어야 할 비밀스러운 대화가 낯선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되고 있다면 그 자체로 끔찍한 일이다.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생활 보호의 필요성은 선정적인 언론보도로 사생활을 폭로당한 사람이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부각됐다. 유명 연예인의 열애설이나 가족사에 대한 폭로성 기사를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은 기사는 동화 속 주인공과도 같은 연예인 이미지를 하루아침에 망가뜨릴 수 있다. 이런 일은 연예인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사생활의 폭로는 존경과 신뢰를 받는 상사나 동료의 이미지를 망가뜨려 사회생활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국가에 의해서도 침해된다. 얼마 전 국무총리실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사찰 사건도 있지만, 과거 국군보안부대에서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 종교인, 교수, 재야 인사 등 민간인을 대상으로 인적사항, 가족사항, 학력과 경력, 자격, 해외여행 정보, 대인관계, 시위 참가 전력 등 개인정보를 수집하였던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감시를 받았던 사람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였고, 대법원은 국가가 함부로 개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정보 공개가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이름, 나이, 주소, 키와 몸무게, 사진 등 신상정보와 범죄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신상정보가 공개된 사람은 성범죄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며, 개인정보가 공중에게 알려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 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성범죄자 개인의 사생활 보호보다는 성범죄로부터의 청소년 보호라는 공익이 더 크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그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국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빈곤과 장애 등으로 복지혜택을 받으려면 의료기록이나 재산, 소득 등 민감하고 세세한 개인정보를 국가에 제공해야 한다. 관련 법률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이런 개인정보가 직간접으로 활용된다.

이와 같은 국가의 개인정보 수집 및 보관 자체가 직접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정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누군가에게 공개되거나 수집 목적과 다른 용도로 활용된다면 자유로운 사생활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이런 개인정보의 공개 및 사용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본권이 정보 주체인 개인에게 있다고 판단한다. 이를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이라고 한다.

최근 은행이나 신용카드회사, 통신회사 등에서 수백만∼수천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적이 있었다. 국가뿐 아니라 회사나 병원, 학교 등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개인정보를 가지고 있고, 이들 정보는 모두 개인의 인격과 밀접하게 관련된 매우 민감한 내용이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보장에 있어서 국가의 행위와 더불어 기업 등 민간의 행위에 대한 감시 및 통제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다.

김현귀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