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산층 현장보고서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영화 ‘러브 스토리’의 포스터. 동아일보DB
김광기 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보스턴대 사회학 박사
요즘 미국 청년들이 내세우는 결혼의 조건은 무엇일까? 문득 1970년에 만들어진 영화 ‘러브 스토리’가 생각난다. 명문가 출신 하버드대생 올리버와 이탈리아계 노동자 계층 출신의 여대생 제니퍼의 사랑 이야기 말이다. ‘엄친아’ 올리버는 여자 집안이 별 볼 일 없다며 반대하는 부모와 의절하면서까지 결혼한다. 하지만 제니퍼에게 불치의 병이 찾아오고 결국 두 사람은 사별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새삼 이 영화를 들먹이는 이유는 현재 미국 젊은이들도 과연 부모와 의절하면서까지 결혼의 조건으로 사랑을 택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서구화와 근대화의 물결로 전 세계 거의 대부분 나라에서 결혼의 제1조건으로 사랑을 먼저 꼽는 것이 당연시된 듯하다.
근대화는 이런 경향을 가속화시켰다. 여기엔 경제적 번영이 주된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일단 배가 불러야(배고픔이 사라져야) 낭만도 사랑도 나오는 것 아닌가.
아마 ‘러브 스토리’의 배경이 되었던 1960, 70년대 올리버의 선택도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때만 해도 미국은 독보적인 세계 최강국이었다. 올리버는 부모와 의절해 도움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올리버의 멋진 결단을 과소평가한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어찌할 수 없다. 원래 사회학자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게 이렇게 뒤에서 구시렁대는 것이니까. 어떻든 올리버의 선택이 대단한 용기였다는 것은 인정할 만하다. 그와 제니퍼의 결합은 경제력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한쪽으로 많이 기우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미국에서 백인이라고 다 백인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유학 시절 지도교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미국 내 유럽 출신 백인들은 다른 나라 출신 이민자들을 비하한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나 그리스 출신들을 가리켜 ‘갈릭 이터’, 즉 마늘도 먹는 사람들이라고 비아냥대는 것은 여기서 비롯한다는 것이었다. 어떻든 이렇게 백인 안에서도 은근한 차별이 존재하는데 올리버가 이탈리아계 여주인공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 자체는 그야말로 ‘로맨틱 러브’의 전형임에는 분명하다.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여전히 미국 젊은이들은 결혼을 사랑의 제1조건으로 내세울까? 많이 달라졌다는 정황이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다.
미국공인회계사협회(AICPA)가 작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학자금 융자 때문에 결혼을 연기했다는 응답자가 15%였다. 뉴욕타임스의 찰스 블로도 “학자금 부채가 현재 결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학자금 대출’이 결혼의 최대 난관이 된 것은 취업난과 실업 때문이다. 경제가 좋으면 빚은 별문제가 안 된다. 특히 미국은 신용이라는 이름 아래 굴러가는 ‘빚 경제’이고 학자금 대출도 너도나도 떠안는 빚 중 하나이기 때문에 대수로운 게 아니었다. 또 취직만 되면 몇 년에 걸쳐 조금씩 나눠 갚으면 된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되고 겨우 취직을 한다 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니 학자금 대출은 최악의 경우 평생을 옭아맬 수 있는 ‘갚지 못할 빚’으로 남는다.
사회 초년병들이 빚이라는 무거운 짐을 안고 첫발을 내딛게 되었을 때의 불안을 상상해 보라. 설상가상으로 배우자가 진 빚까지 떠안게 된다면?
미국도 이제 사랑을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올리버’가 나오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