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풍경
―황명자(1962∼)
간월산 오르는 길,
입동 오기도 전에
마른 억새풀 서걱이더니
새싹 하나 불쑥 솟았다
길 잃은 어린 초록뱀이다
꿈틀꿈틀 몸 옮기는 뱀은
차디찬 골짜기 돌무덤을 찾아들 터,
그조차도 여의치 못하면 얼어 죽을 수도 있으니
얘야, 겁먹지 마라
원래 이 길은 뱀의 길이 아니란다
겨울이 두려운 뱀을 위해
먼저 놀라지 말고
갈 길 내주어야 한단다
불안한 눈빛으로 떨고 있잖니?
불쌍하지 않니?
나조차도 무서워서 돌아가는
거기,
잠시 인적 끊기고
저만치 사라질 동안
길은
먼 데 풍경처럼 까마득하다
‘불안한 눈빛으로 떨고 있지 않니?/불쌍하지 않니?’ 무서움보다 강한 연민을 가르치며 화자는 아이를 다독인다. 뱀이 ‘저만치 사라질 동안/길은/먼 데 풍경처럼 까마득하다’. 아이와 함께 잠시, 까마득히 펼쳐지는 다른 생명체들의 세계를 지켜보는 화자다.
인터넷에서 매우 사랑스러운 새끼 늑대 사진을 봤다. 그 사진에는 이런 문구가 딸려 있다. ‘당신의 엄마는 오늘 새 코트를 얻었나요? 나는 엄마를 잃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에게 인간은 ‘진격의 거인’처럼 무한공포 대상이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