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서 배우는 어린이 교통안전]<下>“운전-보행前생각” THINK 캠페인
영국 런던 워털루 역 앞 버스정류장에 교통사고를 당한 어린이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걸려 있다. 영국에서는 어린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끔찍한 장면도 포스터에 담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만큼 어린이 교통사고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다. 런던=김성모 기자 mo@donga.com
○ 영국 왕실과 정부의 ‘싱크’
영국 왕실은 80년 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나섰다. 어린이 교통사고를 막는 게 첫 행보였다. 당시 영국은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연간 1685명(1930년대)에 이를 정도로 심각했다. 왕실은 왕실사고방지협회를 결성하고 교통안전 교육을 실시했다. 1980년대 이후 영국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건수는 크게 줄었지만 정부가 왕실의 바통을 이어받아 꾸준히 어린이 교통사고를 관리해 왔다. 영국 정부는 1987년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1차 교통안전 기본계획을 작성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교통사고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에는 2차 목표를 내놓았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싱크 캠페인이다. 말 그대로 운전하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생각부터 하자는 뜻이다. 충격적인 문구나 광고 포스터들이 도시 곳곳에 붙기 시작했다. 버스정류장이나 건물 전광판에는 아이가 숨진 채 쓰러져 있는 사진이 내걸렸다. 영화 상영 전엔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짧은 만화도 나왔다. 이런 캠페인은 전국 단위에서 광범위하게 펼쳐졌다. 영국 교통국 정책 담당자 제프 길모어 씨는 “하도 많아 우리도 포스터와 간행물이 얼마나 나갔는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웃으며 답했다.
영국 런던 세인트존스뱁티스트 초등학교 2층 로언 반에서 아이들이 ‘싱크(THINK)’ 캠페인을 통해 교통안전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연습을 한 뒤 야외에 나가 실습 교육을 받았다. 런던=김성모 기자 mo@donga.com
단순히 포스터만 제작된 것이 아니다. 교통국은 일반 기업과도 함께 캠페인을 펼쳤다. 크리스마스 때는 ‘음주운전 캠페인’을 코카콜라와 펼쳤다. 운전자가 술이 아닌 콜라를 구입하면 동승자에게 콜라를 공짜로 줬다. “어른인 운전자에게 콜라를 주는 것이 어떻게 어린이 교통안전 캠페인이냐”는 질문에 길모어 씨는 “어른이 안전하게 운전해야 아이도 다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싱크 캠페인은 어린이 교육 교재로도 쓰인다. 영국 런던의 세인트존스뱁티스트 초등학교 2층 ‘로언(Rowan)반’. 3, 4학년이 섞여 있는(영국의 초등학교 3, 4학년은 우리 나이로 7, 8세에 해당) 이 반 어린이 30명이 교실 가운데 모여 앉아 있었다. 교실 앞 스크린에는 각종 교통표지판 그림이 붙어 있었다. 교실 한가운데에는 큰 종이를 이용해 횡단보도를 만들어 놨으며 그 옆에는 신호등 모양으로 만든 팻말과 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무슨 그림일까?” “너라면 어떻게 건너겠니?” 같은 질문을 계속 던졌다. 질문이 끝나면 아이들은 옆에 있는 아이들과 이야기했다. 교육이 끝나고 선생님과 아이들은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직접 안전하게 찻길 건너는 연습을 했다. 이 모든 교육과정에는 싱크 캠페인의 자료들이 쓰였다. 이 학교의 교통안전 담당인 조지아 슈틀링 씨(37·여)는 “영국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교통안전 교육을 하는데 대부분 싱크 자료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 어린이 사망자 ‘0’가 목표
“우리의 목표는 ‘KSIs’를 ‘0’으로 만드는 것이다.” KSIs는 ‘Killed, Seriously Injured’의 약자로 사망자, 중상자가 발생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싱크 캠페인에는 영국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먼저 영국 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가 발생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계속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운전자나 어린이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사고예방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교통국 길모어 씨는 “‘싱크’ 캠페인은 끝나지 않는, 끝날 수 없는 캠페인”이라며 “특히 어린이 교통사고는 영원히 발생해선 안 될 일인데 경각심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정부가 캠페인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