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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 기자의 뫔길]국화꽃 피우고 하늘나라 떠난 그리운 신부님

입력 | 2014-10-31 03:00:00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로 시작하는 미당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라는 시가 떠오르는 계절입니다.

문득 꽃말 사전을 뒤져 보니 국화만큼 여러 꽃말을 가진 꽃도 드뭅니다. 일반적인 꽃말은 ‘당신은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성실, 고귀, 진실, 청결, 청순, 정조라고 하네요. 색깔별로는 빨강 국화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노랑 국화는 섬세한 사랑과 질투, 짝사랑, 황색 국화는 실망, 흰 국화는 진실과 성실, 이별, 감사….

경기 연천군에서 열리는 구석기축제 한편에서는 10만 송이가 넘는 국화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한 줄기에 400송이의 꽃이 있는 다륜을 비롯해 현무암과 고목에 국화 분재를 길러낸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곳에는 고 전숭규 신부를 기리는 부스도 마련돼 있습니다.

천주교 의정부교구 연천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하던 전 신부는 암으로 투병하다 지난해 3월 52세를 일기로 선종(善終)했습니다. 연천군에서 그는 ‘국화신부’로 불렸답니다. 그가 2005년 성당 뜰에서 시작한 국화 축제가 이번 전시로 이어지며 결실을 맺게 됐습니다.

고인과 함께 국화를 키워온 김재수 씨(72)의 얘기입니다. “신부님이 2004년 9월 부임해 연천에 와서 ‘성당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들 모른다고 고개를 젓더랍니다. 결국 읍사무소까지 찾아와 물었더니 바로 뒤에 있다고 알려줬다고 하네요. 좁은 동네에서 성당 하나 못 찾는 게 아쉽고, 주변에 도움이 될 것이 뭔가 고민하다 교우 중 국화 키우는 분이 있어 축제가 시작된 거죠.”

이듬해 400평 남짓한 성당은 국화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성당 마당에 국화 키우면 사람들이 찾아오겠지’ 하는 고인의 바람도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이 축제는 전 신부가 인근 수련원장으로 발령이 난 뒤에도 계속됐습니다. 지병과 과로로 전 신부가 선종하자 성당과 연천군은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이번 전시로 발전시키게 됐습니다.

가까이서 고인을 지켜본 김 씨의 말이 ‘짠하게’ 들립니다. “국화만 보면 제 심기가 사납죠. 신부님이 국화만 안 했어도 더 사셨을 텐데….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신부님 뜻이 이어지는 것도 같고….”

연천군은 국화 전시 호응이 커서 내년에는 더욱 크게 행사를 준비할 예정이랍니다.

마침, 서울 우정국로 조계사도 2만 송이의 국화로 덮여 있습니다. 국화 옷을 입은 동자승과 보리수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습니다. 두 전시는 모두 11월 2일까지니 서두르셔야 할 듯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국향과 그 속에 담긴 사연을 가슴속에 담아 보면 어떨까요.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