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야구 투수 박병우
국내 하나뿐이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면서 청각장애 투수 박병우도 당장 운동할 곳을 잃게 됐다. 하지만 이 시련이 그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까지 앗아가지는 못했다. 22일 경기 고양시 고양 원더스 훈련장에서 만난 박병우가 밝게 웃고 있다. 고양=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있을까.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는데…. 처음엔 믿지 못해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마음이 아팠다. 나중에 아무도 없는 데서 엉엉 울었다.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 어머니 앞에선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나왔다. ‘열심히 하면 충분히 프로에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땀 흘려 왔는데….
‘야신’ 김성근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청각장애 선수 1호로 프로야구 진출을 꿈꾸던 박병우(21)에게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해체는 한 가닥 희망의 끈마저 끊어지는 아픔이었다.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고양 원더스 해체 소식에 “희망의 불씨가 꺼져 내 몸의 일부가 하나 떼어지는 아픔이다”고 말했듯 박병우의 심정이 그랬다.
박병우에게 야구는 꿈이자 희망이자 동반자이다. 9세 때인 2002년 11월 10일 삼성과 LG의 한국시리즈를 보고 야구를 시작했다. 6-9이던 9회말 1사 1, 2루에서 삼성 이승엽이 LG 에이스 이상훈을 상대로 3점 홈런을 뽑아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와’ 하는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생후 10개월 때 쇠 젓가락을 전기콘센트 구멍에 찔러 넣은 사고 후유증으로 5세 때 청각장애 판정을 받은 그에게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었다.
인천 제물포고 재학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투수로 뛴 박병우는 ‘투구 폼이 참 예쁜 선수’로 통한다. 고양 원더스에서 그를 지도한 김성근 감독이 동료 선수들에게 “공은 저렇게 던지는 것”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고양=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청각장애가 있지만 지금까지 장애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본리초교를 졸업하고 소래중(경기 시흥)을 거쳐 야구 명문 인천 제물포고에서 야구를 했다. 어렸을 땐 장애인 비장애인 학교가 나뉘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삼성 리틀야구단 시절부터 비장애인 선수들과 차별 없이 똑같이 훈련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장애인 특수학교를 보내고 싶다는 뜻을 보였을 때도 박병우가 비장애인 학교를 고집했다.
“사람들은 제가 청각장애인이라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지 않았을까 염려해 주세요. 하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전 친구들하고 잘 지냈으니까요. 다만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말하는 사람들의 입 모양을 보고 답을 해야 하는 것이 좀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요. 감독님이나 선배님들로부터 ‘듣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 아냐’라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 오해는 금방 풀렸어요.”
박병우는 2012년 가내영 감독 소개로 김성근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고교 3학년 때 테스트를 받게 해줬다. 김 감독은 “간결한 투구 폼을 보고 가능성을 봤다. 폼이 예뻤다. 당시 우리 투수들에게 ‘공은 저렇게 던지는 거야’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지난해 초 박병우를 정식 테스트를 거쳐 입단시켰다. 테스트 때 투구에 대해 몇 가지 가르쳐 줬는데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게 마음을 움직였다.
22일 경기 고양 원더스 훈련장에서 만난 김 감독은 박병우를 보며 안타까움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이제야 야구에 대한 느낌을 알기 시작했는데…. 조금만 더 하면 2군 리그에서도 등판해 활약할 수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투구 폼을 알려주며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표정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김 감독은 박병우를 처음 고양 원더스에서 봤을 땐 프로에 갈 확률이 10%였다면 지금은 30% 정도 된다고 했다. 김 감독은 이렇게 노력하는 박병우에게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김 감독은 “장애가 있다는 열등감을 갖지 않도록 공평하게 똑같은 위치에서 훈련시켰다. 처음엔 힘들어했는데 적극적으로 따라 했다. 선수들 간에도 거리감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선배와 후배들 관계도 잘 만들어 갔다”고 평가했다.
김 감독은 혹독한 스승이었단다. 하지만 박병우로선 믿을 곳이 김 감독밖에 없었다. 지난해부터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7시까지 이어지는 사실상 ‘지옥 훈련’을 잘 참아냈다. 고양종합운동장 스탠드 계단 뛰기, 각종 기초 체력훈련과 웨이트트레이닝, 그리고 피칭. 피칭은 오전이나 오후 한 차례 100개 던지는 것으로 끝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체력 만들기는 하루 두 차례 이어졌다. 프로 선수들도 힘들어하는 훈련을 꾹 참아내며 따라 하고 깜깜한 밤에도 혼자 자율훈련을 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프로 진출. 집도 고양시 대화역 근처로 옮겼고 집에도 운동기구를 마련해 틈만 나면 훈련에 매달렸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낙담하는 아들을 보는 어머니 정기문 씨(55)의 마음도 찢어졌다. 박병우가 “어머닌 제 앞에서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어요”라고 했지만 고양 원더스 해체 소식을 먼저 뉴스로 접한 정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아직 우리 아들은 모를 텐데…. 이 소식을 알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정 씨는 마음을 졸이며 아들이 오길 기다렸고 집에 나타난 아들이 눈물을 흘릴 땐 속으로 울었다. ‘우리 아들에게 야구가 어떤 것인데….’
하지만 박병우에게 포기는 있을 수 없다.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사라졌지만 청각장애 프로야구 선수 1호란 꿈은 버리지 않았다. 박병우는 요즘 주중엔 고양 원더스, 주말엔 한국농아인야구대표팀에서 훈련한다. 고맙게도 고양 원더스에서 11월 말까지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리고 11월 20일부터 24일까지 대만에서 열리는 아시아농아인야구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아직 자신을 인정해주고 활약을 기대해주는 팀이 있어 기쁠 뿐이다.
박병우와 김 감독 인터뷰를 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김 감독이 프로야구 한화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병우는 “정말 기뻤어요. 감독님같이 훌륭한 분이 다시 프로야구 감독으로 가서 정말 잘됐어요”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김 감독이 박병우에게 한화 2군에서 훈련할 기회를 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김 감독도 발등의 불을 먼저 꺼야 한다. 바닥까지 떨어진 팀을 재건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일단 한화 바로잡기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다. 김 감독은 박병우와 함께 인터뷰를 할 때 이런 말을 했다. “프로야구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스포츠다. 이기고 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인생에 뭘 선물할지, 뭘 가지고 국민들을 인도할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박병우는 “김성근 감독님이 늘 얘기했어요. 인간은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는다.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대다.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말을 믿고 열심히 더 훈련할 겁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그에게 아직 야구는 꿈이요 희망이요 인생 그 자체다.
고양=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