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반대말 같던 안철수처럼 박근혜 대통령과 참 다른 반기문 충청도에 온화한 중도 이미지…공직자 모범에다 인사개혁까지 야당에선 “참여정부가 만든 총장” 전작권 전환·과거사 청산 옹호 정치력인가, 영혼이 없었던 건가
김순덕 논설실장
위기감에 초·재선의원 중심 ‘쇄신전대추진모임’이 마련한 토론회에서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대비되는 야권 후보가 나오면 재집권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6·4지방선거에서 4곳 모두 야당에 패배한 충청도가 큰일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씨는 “50대에 어필하면서 비호감도가 낮고 중도 이미지를 가진 대선 후보가 야당에서 나오면 새누리당은 대책이 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만큼 여기 딱 들어맞는 인물도 없다. 충청도 출신에 나이나 지역 계층별로 고른 지지율이 나오고, 유능하면서도 온화한 중용의 이미지다. 지난달엔 반기문이 대선에 나온다면 39.7%가 지지한다는 한길리서치 조사도 나왔다. 2위인 박원순 서울시장(13.5%)의 거의 3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4.9%)의 무려 8배다. 특히 여권 성향 응답자 가운데 지지도가 높다는 건 ‘좌파에 정권을 넘길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다는 의미다.
3년 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처럼 반기문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건 일단 빼자. 그때 안철수가 뜬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이명박(MB) 대통령의 반대말이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MB가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 세력으로 간주됐다면, 안철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바른생활맨 같았다.
반기문 스타일은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거의 정반대다. 2012년 ‘안철수의 생각’을 내놨던 영리한 출판사 김영사가 이번에도 때를 맞춘 듯 출간한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를 보면 신기할 정도다.
그가 직접 쓴 책은 아니지만 유엔 개혁을 소개하면서 ‘인사야말로 모든 정책의 성패를 가름하는 열쇠’라고 했고, 그가 미얀마 민주화에 일조한 요인이 ‘상대방 입장도 헤아리면서 이를 타협 과정에 반영할 줄 아는 중용’이라고 한 대목을 보면 어쩌면 이리도 박 대통령한테 없는 부분을 갖췄을까 싶다. 반기문이 ‘유엔을 한 국가의 행정부로, 사무총장을 대통령같은 자리로 인식’하고 ‘대립과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소신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인다는 데선 이 책이 바로 출사표라는 느낌까지 든다.
반기문 자신도 똑 부러지게 정치 안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5년 전 국감 때는 대선 출마 않겠다고 명확히 밝혔다는데 이번엔 “왜 물어보느냐”고 했으면 여지를 남긴 거다. 외국 잡지가 차기 총장감을 거론하는 마당에 우리가 그의 차기 직장을 거론하는 게 불경스러울 것도 없다. 당연히 반기문 대망론을 부채질하는 이들은 새누리당 대선 주자로 반기문이 되면 좋고, 안 돼도 2012년 ‘민주당의 안철수’ 같은 불쏘시개가 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최소한 새정치민주연합 대선 후보로 나오는 것만 막아도 남는 장사일 터다.
반기문의 성공이 어떤 정권에도 충성을 다해 온 ‘영혼 없는 관료’였기 때문인지, 외교 감각 못지않은 정치 능력 덕분인지는 나도 궁금하다. 대통령의 스타일과 가치관 중 국민은 무엇을 중시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제는 포기할 수 없는 마력이 있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