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임숙 경제부 차장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의 이야기다. 교회에서 맺어진 인연은 오랫동안 좋게 이어졌다. 강 전 사장은 이 전 대통령 임기 내내 석유공사 수장으로 정부 해외 자원 개발 정책의 전도사로 앞장섰다. 캐나다에서, 영국에서 조 단위가 넘는 초대형 에너지 개발 회사 인수합병(M&A)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석유공사의 덩치를 키워 나갔다. 그때마다 한국이 에너지 자주국가 대열에 한 발짝 다가섰다고 자랑했다.
좋게 시작된 이 인연이 지금은 악연이 된 모양새다. 강 전 사장 재임 시절인 2009년 석유공사가 거액을 들여 인수했던 캐나다 에너지기업 하비스트 투자가 실패한 것으로 최근 판명난 탓이다.
강 전 사장은 얼마 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출석해 이명박 정부 ‘해외 자원 개발 정책 실패’의 대표 사례로 질타를 받았다. 야당은 ‘국부 유출 자원외교 진상조사단’을 꾸려 책임 소재를 가리겠다고 나섰다. 이쯤 되면 교회에서의 좋은 인연이 교회 안에서만 머물렀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강 전 사장이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비스트 투자 실패로 석유공사 직원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다. 한때 ‘회사가 커나간다’는 기쁨에,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뿌듯함에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고 불태웠던 열정이 나랏돈을 날리는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술자리에 갔을 때 “1조 원짜리 투자를 5일 만에 결정했다며?” “콩고물이라도 좀 떨어졌니?” 등 지인들의 비아냥거림이 쏟아지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 약속을 기피하는 분위기도 생겼다고 했다.
한 기관의 CEO는 이렇게 구성원 전체의 행복지수를 좌우할 만큼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더구나 사기업과 달리 공공기관 CEO에게는 국가에 대한 사명감과 국익에 대한 책임까지 요구된다. 요즘 꽤 길게 비어 있던 공공기관 수장들이 속속 결정되고 있다. 권력자와의 인연을 계기로 ‘한자리’ 차지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책임의 무거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하임숙 경제부 차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