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수가 던지는 공은 그 선수의 운명이다. 투구할 때 고통스러워 보일 정도로 몸을 비트는 까닭은 지름 7.23cm의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던지기 때문이다. 야구공에 새겨진 108개의 실밥을 괜히 백팔번뇌라 부르는 게 아니다. ―훌리건K(최홍훈·연합뉴스·2013년) 》
지난달 31일 핼러윈 축제가 한바탕 휩쓸고 있던 이태원거리. 한창 무르익던 팀 회식 자리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넥센 김민성이 플레이오프 4차전(5전 3승제)에서 2-2로 팽팽히 맞선 5회초 2사 1, 3루에서 LG 선발 류제국을 상대로 결승 3점 홈런을 터뜨린 순간이었다. 열혈 LG팬인 팀장은 분노의 맥주를 삼키며 “LG가 떨어지면 앞으로 일주일간 히스테리를 부릴 테니 각오하라”고 말했다. 이날 LG는 2-12로 대패하며 가을야구를 마감했고 팀장은 술을 많이 마셨다.
팀장의 히스테리가 예고된 이번 주에도 야구는 계속된다. 가을야구의 종점, 대망의 한국시리즈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4년 연속 통합우승에 도전하는 삼성과 창단후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넥센의 대결.
야구가 재미있는 건 인생과 닮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통산 타율 0.195(896경기)에 불과했던 염경엽 감독이 넥센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지 누가 예상했을까. ‘일구일생, 일구일사(一球一生 一球一死·공 하나에 죽고 산다)’의 정신이라면 9회말 2사에도 희망은 있다. 한국시리즈에서 넥센이 우승한다면 이승엽과 중학교 동창인 팀 직속 선배의 히스테리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올가을에는 잡초가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