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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신해철, 대중 가수의 철학

입력 | 2014-11-04 03:00:00


송평인 논설위원

취향이란 본래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다. 신해철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그에 대한 칭송이 아무리 죽음 직후라고 해도 어딘지 과도하다는 느낌이 들고 그 과도함에는 정치적 동기도 없지 않아 보인다.

신해철보다 4, 5년 윗세대인 나는 넥스트 시절의 프로그레시브 메탈 록을 한 신해철부터 기억이 난다. 내 또래는 음악적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중학교 시절을 유신 말기에 보냈다. 그때는 유신의 영향으로 트로트 고고라는 비정상적 장르가 유행했다. 한국 가요는 들을 게 없었다고 생각했다. ‘박원웅과 함께’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1960, 70년대 서구 록을 음악 공부하듯이 찾아 들었다.

그런 세대에게 이미 록의 시대가 가버린 1990년대 신해철이 들려주는 록은 음악적으로 뛰어났는지는 몰라도 전혀 프로그레시브하게 들리지 않았다. 넥스트(next)가 아니라 한물간 프리비어스(previous)의 철지난 모방이었다.

그가 2002년 뜻밖에 노무현 지지 연설에 등장했다. 그가 스스로 소개한 것처럼 정치에 거리를 두고 산 자신의 기존 가치를 버리고 나선 것이다.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고 전대협이 만들어진 1987년 서강대 철학과에 들어간 그는 1988년 강변가요제, 1989년 대학가요제에 잇따라 출전한 것으로 봐서 당시의 학생 대중과도, 종로 파고다의 메탈계와도 다른 정서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저항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기성 체제의 사다리에 올라타려고 노력했던 이 음악가가 세상을 향해 “남을 밟고 일어서고, 내가 남을 밟지 않으면 내가 밟히는 맹수 우리”라고 공격하며 노무현을 지지하니 어리둥절했다.

2009년 노무현 추모 콘서트의 신해철을 유튜브에서 봤다. 그가 관객을 향해 묻는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요?” 관객석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등 갖가지 대답이 튀어나온다. “이명박? 한나라당?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적들을 탓하기 전에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건지지 못했다는 죄의식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씹××들 욕을 해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대 뒤로 움직이다가 갑자기 돌아서며 (아마 적들을 향해서겠지만) “개 × 같은 ××들”이라고 소리 지른다. 인텔리겐차 양아치, 그가 스스로를 규정한 말이다.

위대한 아티스트라는 칭송은 신중현과 김민기 같은 음악가를 위해 남겨둬야 한다. 신중현의 록은 지금 들어도 세련됐지만 어느 곡이나 ‘지금 여기’의 한국이 느껴진다. “음악은 어디까지나 음악이라는 것, 결코 철학이 돼서는 안 된다. 무슨 철학이라도 하는 듯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는 것은 대중음악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모든 록 가수가 새겨들었어야 할 말이다.

김민기는 말로 저항적이지 않았다. 최고의 데모가였던 ‘늙은 군인의 노래’는 그가 군대 시절 전역하던 상사를 위해 만든 곡이고 ‘친구’는 물에 빠져 죽은 후배를 그리워하며 만든 곡이다. 다만 그 곡에 담긴 감정이 무엇과 연결해도 통하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는 저항가요가 됐다.

신해철이 뛰어난 음악적 재질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는 포도 품종으로 치면 카베르네 소비뇽 같은 사람이다. 보르도의 최고 등급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들어진다. 카베르네 소비뇽의 강력한 타닌 성분은 다루기는 힘들지만 잘 다루기만 하면 최고의 와인 맛을 선사한다.

아마도 신해철의 타닌은 너무 강해서 더 숙성이 돼야 가수로서 완성되는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50세 혹은 60세의 신해철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