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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무라카미 하루키와 시오노 나나미

입력 | 2014-11-04 03:00:00


“우리 일본인들은 가해자라는 생각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5)의 소신 발언이다. 3일자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일본의 책임의식 회피를 비판했다. 그는 “종전 후에는 결국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이 돼 버렸다. 잘못한 것은 군벌(軍閥)이며 천황(일왕)도 마음대로 이용당하고, 국민도 모두 속아 지독한 일을 겪었다는 것”이란 말로 일본의 얄팍한 속내를 꼬집었다.

▷세계적으로 두꺼운 독자층을 가진 그가 자국 사람들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는 점이 반갑다. 일본 내부에서 과거사에 대한 기억과 속죄를 촉구한 문인으로 오에 겐자부로를 빼놓을 수 없다. 199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26년 만에 일본에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가다. 그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일본이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질타했다. 올 7월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헌법에 대한 경외심을 갖지 않는 드문 인간”이라며 돌직구를 날렸다.

▷물론 이들과 대척점에 선 일본 작가들은 훨씬 더 많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한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대표적이다. 얼마 전 일본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의 민낯을 드러냈다. 그는 네덜란드 여성을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한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퍼지면 큰일”이라며 “급히 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한국인 위안부와 관련해선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2012년 독도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가 불거졌을 때 오에를 비롯한 일본의 지식인들은 “영토 문제의 악순환을 멈추자”며 침략의 역사를 직시하라고 촉구했다. 당시 무라카미도 아사히신문 기고문에서 “영토 문제가 국민감정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출구 없는 위험한 상황을 일으킨다”며 자성을 호소했다. 내년이면 일본은 종전 70년을 맞는다. 과거로 회귀하지 않게 내부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양심의 목소리가 더 커지길 희망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