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식도락]①도널드 저드와 트러플 스페셜 미니멀리즘을 넘어 재료-형태-색채에 대한 오랜 탐구… 직육면체의 ‘특별한 사물’로 탄생 위엄 넘치는 ‘유럽의 산삼’ 은근-상큼한 맛의 진귀한 송로버섯… 적은 양으로도 테이블을 푸짐하게
얼핏 허허롭다. 그러나 머물수록 무언가 충만하다. 도널드 저드가 1970년(왼쪽), 1992년 발표한 무제 설치작품. 보랏빛으로 도금한 알루미늄과 강판을 두른 색색 아크릴일 뿐인데, 무시 못할 긴장감을 전한다. 국제갤러리 제공
트러플(송로버섯)은 상큼하면서도 은근하고 깊은 향으로 사랑받는 식재료다. 하지만 ‘향신료’는 아니다. 어떤 메뉴에 들어가든 중심을 파고들어 식탁 전체를 지배한다. 10∼12월 이탈리아의 화이트 트러플 수확기를 맞아 세계 각지 레스토랑에서 트러플 스페셜 코스를 내놓고 있다. 메인요리가 무엇이었든, 기억에 남는 건 트러플의 향기다.
지난달 영국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둘러본 한 갤러리 부스는 온갖 회화와 조각, 설치물로 뒤범벅돼 있었다. 행사장을 벗어났다가 깜박 두고 온 가방을 찾기 위해 돌아가며 기억을 되짚었다. ‘저드의 직육면체가 있던 부스.’ 미국 설치작가 도널드 저드(1928∼1994)가 쌓은 강판 박스의 명료한 간결함이 그 뒤죽박죽 공간의 무게중심을 틀어쥐고 있었다.
14개 설치물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의 백미는 3관이다. 작품은 모두 당연한 듯 제목이 없다. 나무합판, 강판, 함석, 아크릴 등 산업자재를 예술작업 주재료로 끌어들인 발상에 시선이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다. 7m 높이의 전시실 벽면을 따라 널찍널찍 배열한 다섯 작품. 또렷이 맺어 빚은 형태와 색채의 향내가 공간 가득 들어찬 자연광에 깊이 배어 퍼진다. 그것만 기억에 남는다.
‘더 레스토랑’의 트러플 샐러드. 거뭇거뭇한 트러플 조각 옆 앙증맞은 흰색 동그라미는 이종화 총지배인의 모친 텃밭(충남 천안시 성환읍)에서 재배한 일본 순무 ‘가부’다. 식감도 앙증맞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1층은 디저트 카페다. 3월에 공간을 확장하면서 벽에 걸렸던 회화를 치우고 홍승혜 작가에게 디자인을 맡겼다. 벽면에 부착한 이미지, 유리문의 ‘[pu¤](미시오)’ 로고, 강철 프레임의 직사각형 의자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식당은 2, 3층. 주방이 들여다보이는 2층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자리다. “파스타가 짜다”고 거듭 불평하는 손님에게 삶은 면과 소금 통만 내놓기도 했던 강력 카리스마의 아베 주방장이 이따금 테이블을 오가며 손수 트러플을 썰어준다. 적은 양으로도 풍부하지만 역시 푸짐할수록 더 흐뭇하다. 트러플은 인공 재배가 불가능한 ‘유럽의 산삼’이다. 떡갈나무 근처 지면 30cm 밑에서 자라는 것을 훈련된 개를 이용해 밤중에 남몰래 캔다. 비교적 저렴해진 검정 트러플의 올해 수입 도매가는 1kg에 110만 원대. 어느 정도 중요한 손님으로 여겨졌는지, 향기의 농담(濃淡)으로 확인할 수 있다. 02-735-8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