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경제부 기자
권위 있는 국제기구의 평가 결과지만 고개가 갸웃해진다. 정부가 온갖 당근과 채찍을 동원해도 기업들의 투자가 뒷걸음질치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경제현실에 비춰 보면 역대 최고 순위라는 빛나는 성과가 더욱 낯설어진다. 일각에서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의 선물”이라는 우스갯소리나 “더 이상 규제 완화가 필요 없겠다”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세계은행의 기업 환경평가는 창업, 건설 인허가 등 기업경영과 관련한 10개 분야를 제도 중심으로 평가하는 지표다. 그만큼 국내의 기업경영과 관련한 제도들이 선진화돼 있다는 의미다. 또 경제 살리기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엔화 약세를 기회로 설비투자에 나서는 기업들에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고 수입 시설물의 관세를 깎아주는 등 각종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제2의 벤처붐’을 위해 창조경제와 관련한 투자에는 각종 파격적인 지원책도 내놓고 있다.
그런데도 기업들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투자 부진의 원인으로 대부분의 기업은 불확실한 경기를 들고 있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반복해서 나타난 ‘모난 돌이 정 맞는’ 기업들 사례가 이유라는 설명도 나온다. 정부가 일으킨 투자 바람에 적극 동참하거나 편승한 기업들은 정부가 바뀐 뒤 시련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드는 대표적 사례는 ‘4대강 살리기’와 ‘해외자원 개발’ 사업이다. 녹색성장 차원에서 추진된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끌려들었던 건설사들은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부터 담합 등의 이유로 시장질서 파괴의 주범으로 몰려 거액의 과징금을 물고 주요 임원들이 형사처벌까지 받았다.
정부가 할당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해외 자원 개발 회사와 광구를 인수하던 에너지 공기업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에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해외 자원 개발붐에 동참해 공기업들과 함께 투자에 나선 민간 에너지 기업들도 사업 축소의 피해를 함께 겪고 있다.
기업들의 자기방어 성격을 띤 이런 주장들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하소연이 나올 정도로 정부와 기업 사이의 신뢰가 약해진 점은 적잖이 우려스럽다.
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