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 국제부 기자
고교 교사인 지인은 최근 학생으로부터 ‘넌씨눈(넌 씨× 눈치도 없냐)’이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학생들과 단체 카카오톡을 하면 ‘구지(굳이)’ ‘어의없는(어이없는)’ ‘역활(역할)’ ‘어떻해(어떡해)’라고 쓰는 아이들이 많아. 명색이 고등학생인데 이런 걸 틀리느냐고 하니 한 학생이 ‘선생님, 맞춤법 지적하는 사람은 넌씨눈이에요’라고 하는 거야. 뜻은 다 통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거지. 자기들끼리 ‘과잉교정 인간’이라는 말도 한다더라. 일종의 잘난 척이라나? 한숨만 나왔어.”
비단 이 교수와 학생뿐일까. 한 재벌 3세는 트위터에 ‘명예훼손’을 ‘명의회손’, ‘무궁한 발전’을 ‘무근한 발전’이라고 썼다가 곧 지웠다. 심지어 글로 먹고사는 언론에서도 맞춤법과 문법 오류가 눈뜨고 못 볼 수준이다. 최근 한 방송에 ‘도둑이 든 칼 뺐어’라는 자막이 등장해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다 말고 “자막 없애라”는 말을 해야 했다.
맞춤법이 한 사람의 교양과 지식을 재단하는 척도는 아니다. 하지만 맞춤법 오류를 시시하고 사소한 일이라고 여기는 태도는 큰 문제다. 이메일, 보고서, 소셜미디어 메시지, 논문, 기사, 책, 판결문 등 종류는 달라도 인간의 주요 생산물은 글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자 있는 물건을 만들면 생산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반품 및 계약 파기가 불가피하다. 본인은 물론이고 조직에도 큰 피해를 입히는 치명적인 실수다.
맞춤법 집착이 언어의 생명력과 생동감을 반감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언어가 언중(言衆)과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건 ‘자장면’과 ‘짜장면’이 복수 표준어로 인정받고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는 수준이지 ‘무난한 분위기’가 ‘문안한 분위기’와 동의어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먹고살기 바쁜데 맞춤법 따위에 신경 쓰느냐고 말하는 태도야말로 ‘넌씨눈’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수많은 부조리와 적폐 또한 그 ‘대충대충’ 문화에서 비롯됐기에.
하정민 국제부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