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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계절을 껴안던 쓸쓸한 정서 그대로

입력 | 2014-11-06 03:00:00

‘길거리 가수’ 출신 아일랜드 뮤지션 데이미언 라이스 3집 들어보니
다양한 악기의 대편성 악곡 돋보여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데이미언 라이스. 거짓말처럼 슬픈 목소리를 지녔다.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영화 ‘원스’의 뒷이야기처럼 사는 가수가 있다.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데이미언 라이스(41)는 20대 중반까지 록 밴드 멤버였다. 약간의 인기를 누렸지만 염증을 느껴 밴드를 탈퇴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농부로 지냈다. 귀국해 통기타 한 대 메고 유럽을 전전하며 길거리 가수로 살았다. 그러다 2002년 발표한 데뷔앨범 ‘O’는 그를 벼락스타로 만들었다.

라디오헤드의 초기 곡을 연상케 하는 지독한 짝사랑 노래 ‘더 블로어스 도터’가 줄리아 로버츠, 주드 로 주연의 영화 ‘클로저’에 쓰이면서 라이스의 이름도 널리 퍼졌다. ‘볼케이노’ ‘캐넌볼’ ‘나인 크라임스’ 같은 애절한 노래들은 길거리에서 태어나 대형 페스티벌 무대로 올라섰다.

2006년 2집 ‘9’를 통해 쓸쓸한 읊조림과 절규, 단아한 포크와 거친 얼터너티브 록을 오가며 진폭을 더 넓힌 라이스는 방랑벽이라도 도진 듯 창작을 뚝 그치고 장장 8년의 침묵에 들어갔다. 단 두 장의 앨범에 담긴 곡으로 공연 활동은 계속했지만 신곡은 못 냈다. 음악적 파트너이자 연인이었던 동료 가수 리사 해니건과의 결별이 너무 아팠던 걸까. 라이스는 음반사를 통해 “내가 나를 미워하는 것을 끝냈을 때, 비로소 난 세상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번 앨범은 그 순간 시작되었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전했다.

라이스가 8년 공백을 깨고 3일 낸 3집 ‘마이 페이버릿 페이디드 판타지’는 추운 계절을 껴안던 쓸쓸한 정서가 그대로다. 때로 덜시머, 실레스트, 월리처, 비브라폰, 하모니엄, 글로켄슈필 같은 다양한 악기가 섞여드는 대편성 악곡이 돋보인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는 라이스를 “가녀린 서정을 긴 공명으로 바꿀 수 있는 소수의 아티스트 중 하나”로 일컬으며 “신작은 마치 1970년대 이탈리아 아트 록의 명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여운을 느끼게 해주는 음반”이라고 호평했다.

김작가 평론가는 “드라마틱하게 몰아쳤다 빠졌다 하는 감정 진폭이 주는 라이스 특유의 매력이 신작에선 덜하다. 전개 방식은 더 섬세해졌지만 자기 장점을 못 살려 아쉬운 음반”이라고 평했다. 한명륜 평론가는 “몇몇 곡에서 느낄 수 있는 악기 사이의 공간감은 클래식적인 측면도 있다”고 평가하면서 “2집에서 리듬, 보컬이 제시했던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들이 좀 더 살아난다든가. 1집의 ‘볼케이노’ 같은 곡이라도 하나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며 아쉬워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