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감독 취임식에서 한자리에 선 넥센 이장석 대표이사(왼쪽)와 염경엽 감독. 동아일보DB
▽팬들의 주장대로 ‘프런트 야구=악(惡)’ ‘현장 야구=선(善)’이라는 공식이 성립할까. 올해 현장 야구를 한 대표적인 구단은 김응용 전 감독이 이끌었던 한화와 선동열 전 감독의 KIA였다. 한화는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을 이끈 김 전 감독의 현장 지휘에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화의 성적은 최하위였다. 삼성 감독 시절 2회 우승을 차지한 선 전 감독 역시 2년 연속 8위에 머물렀다. 현장 야구가 절대 선은 아니었던 셈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프런트 야구’의 대명사를 꼽으라면 단연 넥센이다. 야구 기업 넥센 히어로즈는 이장석 대표이사의 입김에 따라 모든 일이 좌우된다. 프런트 야구를 혐오하는 팬들의 눈으로 보면 그의 언행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LG를 꺾고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은 후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시리즈 준우승은 패배와 다름없다. 염경엽 감독님이 우리 색깔에 맞는 야구를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삐딱하게 보자면 이 대표는 현장에 엄청난 압박을 주고 있다. 또 야구 색깔에까지 간섭하고 있다. 이 대표는 선수 트레이드는 물론이고 신인 선수 지명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과연 그랬다. 선수 시절 스타플레이어가 아니었던 염 감독은 예전 현대와 LG에서 프런트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때 경험이 ‘감독 염경엽’을 만들었다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다. 염 감독은 “야구를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자존심은 누구보다 강했다. 그래서 프런트 일이 쉽지 않았다. 사무실 문을 부숴 버리고 뛰쳐나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현장 선수나 코칭스태프는 프런트에 불평하기 일쑤지만 프런트의 일 역시 쉽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사실을 몸으로 깨치면서 그는 누구보다 프런트와 잘 소통하는 감독이 됐다.
▽따지고 보면 넥센의 프런트 야구는 새로운 게 아니다. 야구 최고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는 다들 그렇게 한다. 재료는 프런트가 마련하고, 현장 지휘자는 이를 잘 요리하면 된다는 주의다. 창단 7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넥센 프런트 야구의 성공 비결은 상호 존중과 소통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대표와 염 감독은 서로를 존중한다. 그리고 ‘팀 성적’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위해 한몸처럼 움직인다. SK는 최근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박경완 2군 감독을 프런트인 육성총괄로 임명했다. 언젠가 팀의 사령탑에 오를 박 총괄에게 미리 프런트 체험을 시키는 것이다. 넥센발(發) 프런트 야구는 이처럼 한국 프로야구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