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메구미, 약물 과다투여 사망]‘납북자 교섭’ 부메랑 맞은 日
고비 맞은 北-日 교섭 지난달 28일 북한 평양에서 북-일 교섭에서 북한의 서태하 국방위원회 안전담당 참사 겸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가운데)과 일본의 이하라 준이치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오른쪽)이 일본인 납치문제 재조사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일보DB
5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북한과 일본인 납치 피해자 전면 재조사에 합의했다고 발표하자 여러 납치 피해자 가족들은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메구미는 장기 미해결 상태로 방치된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북한 측의 약물 과다 투여로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관조차 없이 산속에 묻혔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은 아베 정권에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다. 당장 대북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숨겨 온 아베 정권도 불신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30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정부 대표단의 보고를 받고 “(북한이) 과거 조사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각도에서 철저히 조사를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는 국민에게 납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미 한 달여 전인 9월에 일본 정부가 메구미 사망 증언을 확보하고 있었다면 이날 회견은 결과적으로 국민을 속인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특히 국민의 분노가 “북한에 이용만 당했다”는 비판 여론으로 번지면 아베 정권이 입을 정치적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가 순진하게 북한의 약속만 믿고 대북 제재를 풀어준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는 상황이었다.
꼬여버린 북-일 교섭은 동북아 외교 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한미일 대북 공조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주변국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손을 내밀었다. 한국 중국과 관계가 거의 차단된 속에 북한을 지렛대로 동북아에서 일정 수준 영향력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아베 총리에게 납북자 문제는 정치적 자산이었다. 그는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의 방북 때 관방 부장관으로 동행해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을 고집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꺼내든 장기집권을 위한 재선 핵심 카드도 납북자 문제 해결이었다. 아베 총리에게 기대가 컸던 만큼 이번 사태는 그에 대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