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훈 논설위원
가장 충격적인 전시물 중 하나는 난징시민의 유골이 집단으로 발굴된 곳에 만들어진 ‘만인갱(萬人坑)’이다. 투명한 유리벽에 둘러싸인 유골은 7단계로 층층이 쌓여 있어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중국 주둔 총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휘하의 일본군은 난징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을 총칼로 살해하고 산 채로 매장했다.
기념관에는 당시 일본군 소위 두 명이 상관의 허락을 받고 살인 게임을 한 것을 증언하는 전시물도 있다.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 소위와 노다 쓰요시(野田毅) 소위는 난징을 함락하기 전까지 먼저 100명의 목을 베는 사람이 승리하는 ‘목 베기 게임’을 했다. 이들은 중국 군인만 살해한 것이 아니라 비무장 민간인까지 잔혹하게 참수했다.
학살기념관에는 12초 간격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공간이 있다. 12초마다 일본군의 총칼에 스러져간 희생자를 떠올리며 캄캄한 곳에서 묵념을 했다. 불과 40여 일간 30만 명이 살해된 참상을 이처럼 극적으로 되살리기도 힘들다. 처참하게 파괴된 난징과 살해된 사람들을 상징하는 대형 부조물인 금릉겁난(金陵劫難) 등 곳곳에는 ‘300000’이라는 숫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7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난징 시민들은 일제의 만행을 잊지 않고 있다. 기념관에는 평일인데도 난징시내 초중고교생은 물론이고 노인들까지 관람객들이 몰려든다. 일본인들도 드물게 이곳을 찾는다. 현지 교포 신경란 씨는 “동족의 만행을 목격한 일본 여성 중에는 가슴을 치며 통곡하거나 실신하는 사람까지 있다”고 했다. 톈진 일본학교 중학생들이 놓고 간 추모리본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아베 신조 정권 출범 후 일본 정부와 우익세력들은 ‘과거사 역주행’에 혈안이 돼 있다. 우익세력이 주도하는 일본난징학회 등은 일본 신문이 보도한 ‘목 베기 시합’마저 오보 또는 과장보도라고 주장한다. 학살자 수에 대해서도 종전 후 열린 도쿄전범재판에서 최소 20만 명으로 추산했지만 일본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중국 내의 반작용은 심상치 않다. 시진핑 주석은 3월 독일 베를린 방문에서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자(前事不忘, 後事之師)”면서 일제의 만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행사도 개최했다. 반일감정이 강한 난징 시 정부는 ‘난징대학살 교재’를 만들어 초등학교에 보급했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