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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낭자 천방지축… 그러나 한결 순해진 ‘소노 시온標 코믹물’

입력 | 2014-11-07 03:00:00

B급 야쿠자 활극 日영화 두 편
‘지옥이 뭐가 나빠’ ‘도쿄 트라이브’




장면1
하얀 레이스 치마를 입은 소녀가 깡충깡충 들어온다. 그런데 집안엔 시체들이 널려 있고, 바닥은 온통 핏빛.
소녀는 미끄러지며 킬러 앞에 넘어지는데….
사내가 위로를 건네자, 아이의 한마디.
“바닥 꼴이 이게 뭐야. 다 치우고 가!”


장면2
도쿄를 장악한 조직 세력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심상찮은 일이 벌어진단 소문에 완전무장하고 밤거리를 나선 무리들이 맞닥뜨린다.
부릅뜬 눈빛에 부드득 이를 갈던 폭력배.
갑작스레 쏟아낸 말은 힙합 리듬에 맞춘 랩 배틀?

소노 시온 감독의 영화 ‘지옥이 뭐가 나빠’(왼쪽 사진)와 ‘도쿄 트라이브’는 둘 다 비장하고 끔찍한 장면마저 키득거리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지옥이…’가 35mm 필름영화 시대에 대한 향수가 물씬하다면, ‘도쿄 트라이브’는21세기 애니메이션 MV 같은 휘황찬란함이 가득한 점이 다르다. 프리비젼·BIFF 제공


일본 감독 소노 시온(53·사진)의 영화는 원래 불편했다. 유혈 낭자, 사지 절단은 기본. 성과 폭력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인상부터 찌푸려졌다. ‘자살클럽’(2002년) ‘기묘한 서커스’(2005년) ‘차가운 열대어’(2010년)는 물론이고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두더지’(2011년) ‘희망의 나라’(2012년)도 그랬다. 때깔 좋고 이음새 근사하고 에너지는 넘치지만 대번에 반색하긴 머뭇거려졌다.

하지만 13일 개봉하는 ‘지옥이 뭐가 나빠’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도쿄 트라이브’는 ‘강추’다. 여전히 잔혹은 한가득이나 ‘병맛’(병신 같은 맛이란 인터넷 용어) 코드 휘날리는 웃음이 자극을 한층 순화시켰다. 둘 다 B급 코믹 액션 활극이다.

‘지옥이…’는 126분 내내 정신없이 돌아간다. 앙칼진 딸 미츠코(니카이도 후미)를 영화에 데뷔시키려는 야쿠자 무토(구니무라 준) 패거리와 꿈만 야무진 영화감독 지망생 히라타(하세가와 히로키) 일당을 얼개로 자질구레한 사건들이 꼬리를 문다. 결국 히라타와 친구들이 무토의 제안으로 영화를 찍는데, 실제와 연기가 뒤엉키며 한판 굿이 벌어진다.

이 작품엔 언제나 ‘돌+아이’ 같던 감독의 ‘영화에 바치는 헌사’가 배였다. 걸작 하나만 찍으면 죽어도 좋다는 히라타는 그의 분신. “돈 보고 찍은 영화가 일본 영화계를 망친다”는 대사는 자기 속내일 터. 히라타가 이끄는 팀 ‘퍽 바머스(Fuck Bomers)’도 젊은 시절 꾸렸던 영화제작집단 이름이다. 야쿠자 영화의 거장인 후카사쿠 긴지 감독(1930∼2003)과 리샤오룽(1940∼1973)에 대한 오마주가 가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쿄 트라이브’는 더 난장판이다. 가까운 미래, 도쿄의 밤거리는 공권력의 손을 떠났다. 각자 영역을 차지한 트라이브(tribe·집단 혹은 부족)들이 날을 곧추세운 상황에서, 조직 ‘부쿠로’의 메라(스즈키 료헤이)와 ‘무사시노’에 소속된 카이(영 다이스)가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인다. 얘기가 뻔해 보인다고? 감독은 여지없이 뒤튼다. 대사 대부분을 힙합 음악에 맞춰 랩으로 바꿔 버린 것.

속사포 같은 랩 배틀은 왁자지껄한 액션과 궁합이 절묘하다. 질펀한 농담과 과장된 피범벅이, 힙합의 ‘앙꼬’인 디스(diss·비난)와 버무려지며 짜릿함을 선사한다. 번잡한 구성인데도 쫀쫀하고 미끈하다.

두 편이 구현한 엉망진창 세상은 감독이 품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뭔가가 꼬여 버린 요즘 일본의 현실을 오라지게 까댄다. 감독은 시큼한 조소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화두를 꺼내고 싶은 것일지도.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소노 감독은 ‘두더지’부터 동일본 대지진 이후 뒤틀린 일본 사회의 정체성을 도마에 올려왔다”며 “최근엔 극단적 면모를 덜어내고 대중적 화법으로 다가서려는 전향(?)도 엿보인다”고 평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