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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말이 곧 詩가 되는 우리 이웃들

입력 | 2014-11-08 03:00:00

◇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서정홍 시·정가애 그림/119쪽·9500원·문학동네




‘믿고 보는 작가’가 있으신가요? 그 작가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조바심 내며 책을 구해 놓아야 맘이 놓이는 작가 말입니다. 제게는 서정홍 시인이 그런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나는 못난이’라는 동시집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즘 발표되는 동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뭔지 모를 어색함과 불편함 없이, 편히 읽었습니다. 책을 덮고도 그 여운이 남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시인이 보여주는 커다란 세계로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도 그러합니다. 쉽고 따뜻하고 벅찹니다. 이 시집은 작가의 주변 사람 이야기입니다. 방수 페인트 기능사 요한 아저씨, 드라마 보조 출연자 진수 삼촌, 목욕탕 주인아저씨, 택배기사, 진주 할머니, 종필이 형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그들을 보는 눈은 섬세하고 따뜻합니다. 시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인 듯 보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투 그대로가 시가 됩니다. 책 뒤 해설에서도 말했듯이 어린이용 ‘만인보’라 하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의 삶도 스스로는 주인공이었던 시간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주인공이 무어, 따로 있나’라는 무심한 말 한마디로 말입니다.

작가는 농부입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느끼는 자연의 섭리는 엄청난 것이겠지요. 함께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이야기합니다. ‘시인이란 쉬운 걸 어렵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걸 쉽게 쓰는 사람이라’는 본인의 말처럼 아주 쉽게요. 이 책을 통해 쉬운 시의 매력에 빠져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름밤’이란 시가 마음에 듭니다. ‘산골 사는 고모가/보내온 찰옥수수//늦은 밤이라//우리 식구들은/한 개씩 먹기로 약속해 놓고/두 개씩 먹었습니다.//잘 먹었습니다. 고모.’ 달큰한 옥수수 냄새와 씩씩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포만감 가득, 편안합니다. 이 책을 다 읽은 기분이 그러합니다.

김혜원 어린이독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