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의 ‘육아 전쟁’
○ 엄마만 찾는 아이, 워킹맘은 괴롭다
대기업에 다니는 강주현(가명·33) 씨는 육아휴직 8개월 만에 회사로 복귀했다. “정기인사에 맞춰 복귀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부장의 ‘권유’를 무시할 수 없었다. 8개월쯤 되면 젖을 뗄 때도 됐건만 아이의 젖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낮 시간 동안 엄마의 부재를 보상받으려는 듯 엄마 품에만 안기면 젖을 찾는다. 애만 낳으면 키우는 건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던 남편은 별 도움이 안 된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남편은 야근이 잦다. 주중 3, 4일은 밤 11시나 돼야 집에 온다. 야근 안 하는 날은 퇴근하자마자 피곤하다며 침대로 직행한다. 이 때문에 평일 육아는 주현 씨가 전담하다시피 한다.
○ 나름대로 한다고는 하는데…
6개월 된 아들이 있는 안창민(가명·35) 씨. 주말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보기 위해 소파에 앉자마자 불벼락을 맞았다. “아이가 벌거벗고 기어 다니는데 기저귀 채워줄 생각이 안 들어?” 안방에서 자는 줄 알았던 아내가 어느새 거실로 나와 레이저 광선을 쏘고 있었다. 창민 씨는 홧김에 TV 리모컨을 집어던졌다. “기저귀를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아내가 보기엔 성에 차지 않더라도 내 나름대로 아이를 보고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울컥한 창민 씨의 항변이다.
김승훈(가명·38) 씨는 아내가 지방 출장을 간 4일 동안 네 살짜리 아들을 보살피기로 했다. 4일 중 하루만 오후 7시에 퇴근할 수 있었다. 그날은 팀 회식이 있었지만 “아이 볼 사람이 없다”며 눈 딱 감고 불참했다. 회식하러 가는 동료들과 헤어져 집으로 향하는데 뒤통수가 따가웠다.
○ 승진 포기해야 가능한 아빠 육아
중앙 부처 공무원인 안봉근(가명·38) 씨는 내년에 아내가 육아휴직 1년을 마치면 본인도 1년 육아휴직을 할 생각이다. 휴직을 결심하면서 마음을 비웠다. 그는 “내가 장차관 할 인물도 아니고 은퇴 후 남는 것은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이라며 “눈치가 많이 보이지만 결심을 굳혔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공무원이라 육아휴직을 낼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한국의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직장에 매여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영유아와 청소년 자녀를 둔 30, 40대 부모의 주당 노동시간을 조사한 결과 2013년 기준 30대 남성의 주당 노동시간은 47.2시간(여성 41.7시간), 40대 남성은 46.6시간(여성 42시간)이었다. 아빠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엄마보다 하루 1시간 정도 더 긴 셈이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