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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ICC 제소 막으려… 北, 美-中회담 직전 유화카드

입력 | 2014-11-10 03:00:00

[한반도 주변 정세 출렁/가까워지는 北-美]미국인 2명 석방한 까닭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에게 케네스 배 씨(46)와 매슈 토드 밀러 씨(24) 등 미국인 억류자 2명의 석방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낸 것은 두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진정성 있는 1 대 1 소통을 한 첫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8일(현지 시간)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DNI)이 김정은에게 전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방북했다”며 “친서에는 ‘억류된 미국인을 데려가기 위해 방북한 대통령의 특사’라는 점이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클래퍼 국장이 김정은을 만나지는 않았다”고 했다. CNN도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가 김정은에게 전달됐다며 “친서 내용은 짧고 간결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중간선거가 끝난 뒤 나흘 만에, 베이징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기 나흘 전에 전격 단행된 억류자 석방은 워싱턴과 평양의 오랜 협상 결과이자 자국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치밀하게 계산한 타협의 산물인 것으로 관측된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북-미 양국이 억류자 2명의 석방을 일찌감치 결정한 뒤 시기와 형식을 조율했다”고 전했다.

이번 북한의 석방 결정은 유엔 제3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북한인권결의안에 ‘최고 존엄’인 김 비서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가 포함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매력 공세(charming offensive)’라는 데 이견이 거의 없다.

4일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상하 양원을 공화당에 빼앗기는 수모를 겪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외교적 성과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안방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게 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체면을 세워주는 대신 김 비서의 ICC 제소만은 막아 달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워싱턴과 베이징에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인 2명의 석방을 위해 자신의 측근이자 정보기관 책임자인 클래퍼 국장에게 친서를 들려 보내는 성의를 보였다. 이에 앞서 8, 9월 잇따라 백악관과 국무부 국가정보국(ODNI) 등 정보기관 고위 관리들을 군용기편으로 평양에 보내 직접 설득에 나서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 씨 등이 8일 클래퍼 국장과 함께 평양을 떠난 것이 확인되자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두 사람의 안전한 귀환에 매우 감사하다”며 “오늘은 그들과 가족에게 매우 좋은 날이며 그들이 안전하게 돌아온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도 이날 성명을 내고 “억류 미국인들의 행동에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았다”고 주장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또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김정은 직함)이 석방을 지시했으며 두 사람이 자신들의 범죄를 진심으로 뉘우쳤다”고 덧붙였다.

이제 관심은 이번 접촉을 통해 북-미 양국이 어떤 대화를 나눴으며 미국이 어떤 ‘선물’을 약속했는지에 모아지고 있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억류자 석방 이외의 의제를 언급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해 미국이 북-미 대화 및 인도적 지원 재개, 제재 완화 등 북한의 요구사항을 청취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그는 “클래퍼 국장은 억류자 석방이라는 목적 외에 어떤 외교적 목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국무부 소속의 외교관이 아니라 정보를 다루는 인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클래퍼 국장은 북한 측에 ‘미북 간 대화를 위해선 비핵화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클래퍼 국장과 함께 8일 평양을 떠나 괌 공군기지에 도착한 억류자 2명은 이날 오후 9시경 워싱턴 주 터코마 시 루이스매코드 합동기지에 도착해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과 친지의 품에 안겼다.

배 씨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미 국무부, 북한 정부에 감사를 표한 뒤 억류 기간에 자신과 가족을 지지하고 힘을 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밝혔다고 AFP통신 등은 전했다. 그는 “놀라운 2년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성장했으며 체중도 많이 줄었다”며 “하지만 나는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여러분 덕분에 강하게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이승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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